강희룡<br>​​​​​​​서예가
강희룡
서예가

공자가 주(周)나라의 태묘(太廟)인 후직의 사당을 구경하다가 쇠로 만든 사람(金人)을 보았는데 입이 세 겹으로 봉해져 있었다. 이 금인의 등에 ‘옛날에 말을 삼가던 사람이다. 경계할지어다. 말을 많이 하지 말라. 입은 화의 문이 되는 것이다. 힘을 믿고 날뛰는 자 제명에 못 죽고, 이기기를 좋아하는 자 반드시 적수를 만나게 된다. 경계해야 할 것이다’라고 새겨져 있었다고 한다. 금인은 주나라의 시조 후직(后稷)의 사당 오른쪽 계단에 있던 쇠로 만든 사람을 일컫는다. 이 내용을 공자는 공자가어(孔子家語) 관주(觀周)에 기록했다.

조선 후기 문신인 허목(1595∼1682)은 공자가어(孔子家語)에 실린 ‘금인의 명(金人의 銘)’을 그의 문집인 ‘미수기언(眉<FFFC>記言). 서문(序文)’에 실었다. ‘나는 독실하게 옛글을 좋아해 늙어서도 게을리 하지 않았고, 언제나 경계하는 마음을 가져 말조심과 관련된 금인의 명을 읊조렸다’고 했다. 청렴하고 강직하기로 이름난 허목이 자신이 말한 걸 기록해 그대로 실천하기 위해 ‘기언’을 편찬했음을 알 수 있다. 말을 많이 하는 사람들의 말에는 무게가 없다. 말에 무게가 없으면 진실을 말해도 소모품처럼 사라져 신뢰감이 없다. 실천력 또한 없기 때문에 아름답게 꾸미며 속이는 감언이설이 거의 대부분이다.

이에 반해 사유가 깊고 인격체인 사람은 말한 내용을 반드시 실천에 옮기기 때문에 말을 많이 하거나 함부로 하지 않는다. 말하기 전 언행일치의 생각을 먼저 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말에는 무게와 위엄과 진실이 있으며 저절로 말수가 줄어든다. 퇴계 이황은 ‘자신을 낮추고 남을 높이며, 자신에게는 엄격하고 남에게는 관대하라는 ‘박기후인(薄己厚人)’의 선비정신을 강조했다. 이 정신으로 조선의 선비사회에서는 천하의 공정한 말을 사론(士論)이라 하고, 당세의 제일류를 사류(士流)라 일컬었다. 사해(四海)에서 의로운 명성을 얻도록 고무하는 것을 사기(士氣)라 이르고, 군자가 죄 없이 죽는 것을 사화(士禍)라 했으며, 학문과 도를 강론하는 것을 사림(士林)이라 했던 것이다.

오늘날 권력을 가진 위정자나 공직자들의 이중적 잣대는 그 영향이 본인에게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타인에게까지 미치기 때문에 폐해가 실로 막대하다고 보겠다. 지난 13일 여당대표가 신년 기자회견에서 ‘스스로에게는 엄하고 국민께는 더 낮게 다가가는‘박기후인’의 자세로 사심 없는 개혁을 이끌겠다’고 국민 앞에 다짐했다. 새로 임명된 신임 대통령비서실장 역시 비서실에 근무하는 모든 공직자들은 비장한 각오로 되새겨야 할 사자성어로 ‘춘풍추상(春風秋霜)’을 언급했다. 이 춘풍추상은 ‘남에게는 봄바람처럼 대하고 자신에겐 가을서리처럼 엄격해야 한다’는 뜻으로 채근담에 나오는 ‘대인춘풍 지기추상(待人春風 持己秋霜)’을 줄인 표현이다. 박기후인과도 그 뜻을 같이 하며 공직자의 기강을 강조하는데 즐겨 쓰던 단어이나 말잔치이지 실천에 옮겨진 사례는 거의 없다고 본다.

2014년 지난 정부 당시 김기춘 비서실장은 청와대 직원의 비위와 관련해 ‘사안의 대소경중을 불문하고 엄단해 기강을 확립할 것이며, 춘풍추상의 마음으로 청와대 기강을 먼저 바로 세워야 각 부처의 기강을 세울 수 있다’고 말했다. 권력자들 스스로에겐 추상같이 박하게 임하겠다고 다짐했던 결과가 전대미문의 대통령탄핵까지 이어졌다. 말만 옮긴다고 채근을 씹던 선현의 지혜가 구현되는 건 아니다. 내편에게는 후하고 상대에게는 야박하게 구는 소위 ‘내로남불’이 더 일상화된 지금의 정치판에서 누구라도 국민 앞에 내뱉는 말을 실천에 못 옮기면 그 약속은 공허하기만 하며 언어유희에 지나지 않는다. 정치인을 비롯한 사회지도층에서의 말이 허언(虛言)으로 판치는 나라는 미래가 그리 밝지는 못하다. 위정자들이 주는 피해는 결국 국가나 국민들에게 환란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역사는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