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창구<br>​​​​​​​대구가톨릭대 교수·국제정치학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교수·국제정치학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국제외교무대에서 주목받고 있다. 북한의 비핵화가 초미의 관심사인데다가 남북정상회담에 이어 북중 및 북미 정상회담이 계속되면서 국제적 관심이 크게 높아지고 있다. 김정은의 핵외교는 그의 국제정치적 위상을 제고함으로써 대내적으로는 권력기반을 강화하고 대외적으로는 대미협상력을 증대시키는 이중효과를 거두고 있다.

김정은의 핵외교는 북미협상의 ‘후원자로서는 중국’을, 그리고 ‘중재자로서는 한국’을 활용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그는 동아시아지역에 대한 미중 패권경쟁뿐만 아니라 현재 진행되고 있는 미중 무역전쟁을 최대한 이용하여 북한의 전략적 가치를 제고시킴으로써 중국의 지원을 이끌어내고 있다. 그 결과 중국은 북미협상에서 양국 동시행동, 즉 ‘북한의 단계적 비핵화 조치와 미국의 제재완화’를 동시에 요구하는 북한의 입장을 지지하고 있고, 유엔제재의 장기화에 따르는 북한의 경제난을 극복할 수 있도록 은밀한 방법으로 대북지원을 계속하여 왔다.

한편 북한은 한국을 북미협상의 중재자로 활용함으로써 외교적 성과를 극대화시키고 있다. 남북정상회담을 통하여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이를 바탕으로 문재인 정부를 북미협상의 중재자로 나서게 함으로써 북한의 주장을 반영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채널을 확보하였다. 김정은은 지난 해 5월 트럼프 대통령의 전격적인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연기 발표가 있자 긴급히 문 대통령의 중재를 요청함으로써 가까스로 회담이 열릴 수 있었다. 또한 문대통령은 작년 10월 유럽방문 때 비핵화의 단계적 조치에 따른 유엔의 제재완화가 필요하다는 북한의 대변인 역할을 하였다. 김정은의 입장에서 본다면 문재인 정부의 중재외교는 ‘손도 안 대고 코를 푸는 격’이니 적지 않은 성과를 거두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우리민족끼리’라는 명분으로 남북관계 개선과 남북경협을 모색함으로써 한미동맹을 균열시키고 경제제재도 극복할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은 외교전략은 없다고 할 것이다. 이처럼 김정은의 비핵화를 명분으로 한 외교는 다차원적 목적을 가지고 있으며 이미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이러한 김정은의 핵외교가 한국안보에 미치고 있는 중대한 영향을 경시(輕視)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김정은이 북미협상에서 적극 활용하고 있는 미중경쟁과 갈등을 우리가 해소하기는 어려우며, 중국도 역시 미중협상의 과정에서 북핵문제를 최대한 지렛대로 활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북한의 비핵화과정이 결코 녹록치 않을 것임을 예상할 수 있다. 중국의 입장에서 볼 때 북한의 지정학적 가치는 ‘순망치한(脣亡齒寒)’의 관계에 있기 때문에 북핵은 해결되어야 할 일이지만 북한을 절대로 포기할 수는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핵 위협에 대응하는 한미동맹은 균열상을 보이고 있다. 국내적 위기에 몰려있는 트럼프 대통령은 정치적 입지 강화와 다음 대선을 위하여 북미협상을 활용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또한 최근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북미협상과 관련하여 “궁극적으로는 미국 국민의 안전이 목표”라고 한 발언은 동맹국인 한국에 대한 안보 공약을 의심케 한다. 최악의 경우에는 동맹국도 배신할 수 있는 것이 냉혹한 국제정치이다. 마찬가지로 한국도 북미협상에서 중재외교를 자처하고 있으니 미국 역시 한국의 의도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남북관계 개선이 북미협상의 진전 속도를 초과하여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서 미국의 우려와 불만도 적지 않다. 이처럼 한미동맹의 이견이 너무 심하다보니 ‘북핵은 제거가 아니라 동결로 끝날 수도 있다’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따라서 이제 정부는 ‘동맹의 당사자인 동시에 협상의 중재자’로서 그동안 추진했던 ‘동맹외교’와 ‘중재외교’에서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는지’를 냉정하게 분석, 평가하여 향후 외교전략을 모색하지 않으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