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차차 꽃잎들’
김말화 지음·애지 펴냄
시집·1만원

“날 내버려두지 마세요, 나는 갸르릉갸르릉 낡은 바이올린처럼 울고 낡은 바이올린처럼 웃어요 이 현기증 나는 노랑을 노란 갈증을, 낡은 내 그림자는 당신을 붙잡지 못하겠지만 우린 모두 폐인이 되어서야 조금 더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안녕, 달콤한 슬픔의 중독이여.”-김말화 시 ‘밤의 카페’전문

포항에서 활동하는 여류 김말화 시인이 자신의 인생이 담긴 시집‘차차차 꽃잎들’(애지)을 펴냈다.

그의 시집 출간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가 20년 가까이 써내려간 수백편의 시만큼의 농도 짙은 감성이 시집 가득 배여 있다.

쓸쓸한 시공간을 섬세하고 개성 있는 감성으로 불러내 충만과 탄생의 공간으로 치환한다. 소멸 쪽으로 기우는 시간들과 녹슨 추억을 닦아 허공에 내거는 시적 주체들은 출발한 지점으로 되돌아와 있는 오늘과 새로울 것 없는 내일의 세계로 허밍허밍, 차차차, 걸어간다.

시집에는 주로 상실과 슬픔을 노래하는 밤의 서정들을 적은 시 57편이 실렸다.

‘보름달 증후군’에서는 “라, 라 붉은 루주를” 바르고 외출해 반짝이는 반지와 귀고리를 훔치고 별과 어둠을 훔치는 화자가 나오고, ‘밤의 카페’에서는 “상처를 할퀴는 건 이별이 아니라 얼음 같은 그대의 키스에요” 라고 말하는 무희가 등장하고, ‘달맞이꽃’에서는 “밤마다 등에 별을 박고 짐승처럼”우는 화자가 있다. 한숨과 회한의 시어들 사이로 낯선 이미지들을 충돌시켜 상실과 슬픔을 빗질하는 시선이 새롭다.

표제는 시 ‘벚나무 집에 갇히다’에서 따왔는데, 연분홍 벚꽃잎이 꽃비로 내리는 풍경을 차차차 스텝으로 바라본 시선도 인상적이다. 이처럼 붉은 시간을 노래하는 시인의 화법은 절묘한 리듬을 거느리고 있어 마치 육성을 듣는 듯 생생하다.

김말화 시인.
김말화 시인.

해설을 쓴 이병철 평론가는

김말화 시인의 시세계를 “사막에 내리는 천 개의 달빛”으로 요약하며 “과거를 향해 보내는 가장 아름답고 곡진한 작별인사”라고. “뼈아픈 자기진단을 통해 타자와의 합일에 이르고 있다”고 말한다.

늦은 나이에 시 공부를 시작했고 더 단단해지기 위해 하늘을 보는 버릇이 있다는 김말화 시인은 ‘우포늪’에서 “늪은,/ 늪의 탯줄을 따라 새로 태어나고 있다”고 밝혔듯 우리 생의 쓸쓸하고 아픈 시간들을 잘 달여 ‘시, 시집’이라는 좋은 그늘로 엮었다.

김말화 시인은 포항 토박이로 2008년 ‘포항문학’으로 등단했다. 포항문인협회 사무국장을 역임하고 현재 시동인 푸른시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저작권자 © 경북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