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한동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배한동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2017년 진보를 표방하는 촛불집회가 적폐 청산을 내세워 정권 교체를 이룩했다. 보수를 지지하는 태극기 집회가 박근혜 대통령을 옹호했으나 대세는 역부족이었다. 아직도 촛불과 태극기의 행렬은 간간이 이어지고 있지만 그 화력은 약하다. 지난번 시위 과정에서 충돌할 위험도 있었지만 묘하게도 피하게 된 것만 해도 다행이다. 양측 모두 진보와 보수를 앞세워 자신들의 정당성을 주장한다. 이러한 현상을 흔히들 정치적 ‘이념 갈등’이라 하지만 이러한 갈등을 이용하려는 정치 세력이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중우정치(衆愚政治)는 참 진보도 보수도 아닌 경우가 많다.

이데올로기(ideology)란 어원적으로 이념(idea)의 논리(logic) 합성어다. 정치이념은 개개인의 정치적 의사가 공동체 안에서 집단화된 신념체계이다. 정치적 동물인 인간이 정치현상에 대해 일정한 이데올로기를 갖는 것은 당연하다. 대표적인 정치 이데올로기 구도는 보수주의와 진보주의이다. 보수는 우익, 진보는 좌익으로 분류되며 그 중간에 여러 이념 스펙트럼이 존재한다. 보수는 전통적 가치와 체제에 만족하면서 급진적 변혁을 싫어하는 입장이며, 진보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 개혁이나 혁신을 선호한다. 둘 다 인류의 인권과 자유의 가치를 보장하기 위한 수단이다. 세상은 새의 좌우 날개처럼 양쪽이 공존해야 안전과 발전을 보장할 수 있다.

우리의 정치 사회의 문제는 사이비 보수와 진보간의 갈등 양상이다. 이들 간에는 사사건건 감정적으로 대립하고 곳곳에서 상대를 타도의 대상으로 본다. 이념 과잉으로 눈이 먼 사람은 무조건 상대를 악으로 규정하고 자신들은 선을 자처한다. 이들간에는 정치적 사안에 대한 해석과 평가가 완전히 다르다. ‘남북 정상의 대화’만 해도 사이비 보수는 공산 국가 되기 위한 준비단계로, 진보는 평화 정착의 토대로 환영한다. 원자력 발전소 건설문제도 이념의 잣대로 분석한다. 보수는 상대를 ‘종북 좌빨’로, 진보는 상대를 ‘수구골통’이라 비난한다. 이러한 감정싸움은 가족, 동창회, 종친회, 동향 선후배 사이에도 종종 발생한다. 유쾌해야할 친목 모임이 종종 파탄으로 끝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보수와 진보의 참가치를 모르는 사람일수록 감정의 기복은 더욱 심해진다. 자신의 정치적 불만을 정치적 한풀이로 삼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 사이비 이념에 침작해 감정싸움을 한 역사는 상당히 오래다. 한국사회에서 이념 갈등의 뿌리는 대부분 정치인들의 헤게모니 싸움에서 비롯됐다. 해방정국의 정치인들의 과욕이 이념이란 이름으로 포장돼 중상모략, 암살로 연결되기도 했다. 또한 6·25 동족간의 전쟁은 이념간의 대립과 갈등을 더욱 증폭시켰다. 당시 좌익과 우익의 개념조차 모르고 그것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다 희생된 사람이 많다. 제주도 4·3, 여순 반란사건, 대구 10·1 사건도 모두 사이비 이념을 근거로 상대를 단죄해 버렸다. 지금도 골동품이 된 미국의 메카시적 수법이 선거 때마다 등장한다. 우리 현대사의 슬픈 비극이다. 오늘의 가짜 뉴스도 상대방 공격의 무기가 된다. 그것이 정치적 식견이 부족한 과잉동조 층의 무기가 되니 안타까운 일이다.

이제 우리 사회도 사이비 보수와 진보의 갈등은 하루 빨리 종식돼야 한다. 이 원인을 제공한 정치인들부터 이를 바꾸기 자성이 필요하다. 보수를 자처하는 자유한국당도 진보를 앞세운 더불어민주당도 정당개혁을 통해 참 보수와 진보의 가치를 정립해야 한다. 선거 때만 되면 정치적 상대를 악으로 규정하는 마타도어와 흑색선전부터 탈피해야 한다. 그리하여 보수와 진보를 지지하면서도 양쪽을 수용하는 중도(moderate)층이 늘어나야 한다. 이러한 이념의 극한 대립을 피하기 위해서는 원론적으로 양당제가 아닌 다당제가 바람직하다. 그러나 우리 국민은 아직도 양극단을 선호하고, 그 중간을 기회주의로 보기 때문 다당제의 정착은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