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인자 시인

초록 숲을 품은 섬 사이로 하얀 파도가 넘실댄다. 그 바다를 배경으로 황금빛 모래사장 위에 두 여인이 앉아 있다. 건강미가 넘치는 구릿빛 피부가 인상적이다. 흰색 상의에 상아색 꽃무늬가 그려진 빨간색 스커트를 입고 있는 한 여인은 눈을 지그시 감고 있고, 분홍 원피스를 입은 다른 여인은 덤덤하게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 휴식을 즐기는 모습이 자연스럽고 여유롭다. 꾸미지 않은 두 여인의 모습에서 토속적인 느낌이 묻어난다. 빨강 초록 파랑 노랑 등 강렬한 원색들이 화폭을 채우고 있는 이 그림은 고갱의 ‘타히티의 여인들’이다. 타히티를 동경하며 그곳의 풍경을 그림으로 남긴 폴 고갱. 그에게 타히티는 무한한 상상력을 이끌어내는 원천이었다.

고갱은 예술의 도시, 파리에서 태어났다. 당시 파리는 근대화의 물결과 정치적 혁명기라는 시대적 혼란 속에 있었다. 그는 선원 생활과 주식중개인 등으로 생존을 위해 치열하게 일했다. 그러나 경쟁적인 도시의 삶은 그에게 행복을 주지 못했다. 현실의 불만은 오히려 순수한 예술세계를 지향하게 했고 화가로서의 길로 들어서게 했다. 그는 오직 예술을 위한 새로운 공간이 절실히 필요했다. 산업혁명으로 오염화되어 가는 서양문명을 혐오하던 그는 문명에 젖지 않은 곳을 갈망했다.

그런 곳을 찾아 여행하다가 발견한 곳이 바로 타히티였다. 남태평양에 위치한 작은 섬, 타히티는 원시적인 풍토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타히티 사람들의 꾸미지 않은 소박함과 건강한 인간상이 주는 매력, 그리고 비문명적인 타히티는 그가 찾던 이상향이었다. 그는 그곳에서 불멸의 작품들을 남겼다. 고갱에게 지상낙원은 타히티였다.

완전한 행복을 추구하는 인간은 불만족스러운 현실을 살면서 지금 여기가 아닌, 다른 어느 곳에 현실보다 훨씬 나은 이상향이 있다고 여긴다. 인간이 지어낸 이상향 중에 샹그릴라도 낙원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다. 영국의 작가 제임스 힐튼의 ‘잃어버린 지평선’이란 소설에 나오는 샹그릴라는 소설에서 이상향으로 창안해 낸 도시 이름이다.

샹그릴라는 눈 덮인 산과 계곡, 푸른 호수,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여 눈부시게 아름다운 곳으로 묘사돼 있다. 또한 그곳은 인간의 혼잡한 걱정과 혼란스런 세상을 벗어난 곳이고, 늙음과 죽음을 초월한 불로장생의 낙원으로 소개되고 있다. 티베트어로 ‘마음속의 해와 달’이라는 뜻의 샹그릴라는 인간의 근심과 고통에서 해방된 지극히 평화로운 마을의 상징이 된 것이다.

가상의 도시지만 존재하는 도시처럼 알려져 히말라야 여행자들은 샹그릴라를 발견하려고 히말라야 부근을 찾아다니기도 했다. 급기야 중국은 윈난성 북서부에 위치한 중뎬이라는 지역을 샹그릴라로 개명하여 그곳이 전설 속 샹그릴라라고 발표했다. 그러자 수많은 관광객들로 붐비면서 막대한 관광 수입을 올리고 있다.

이외에도 무릉도원이나 홍길동전에 등장하는 율도국 등에 낙원을 꿈꾸는 인간의 욕망이 잘 드러난다. 시대마다 혹은 나라마다 이상향을 지어내는 데에는 한 가지 경향이 있는 것 같다. 현실의 고통과 혼란이 가중될수록 이상향을 그리는 인간의 욕망은 더 강해지는 것이다.

인간의 갈등과 사회의 그늘이 더욱 깊어지고 있다. 조기 퇴직과 실업, 빈곤층 증가, 이혼과 자살의 증가, 도덕성 상실 등 많은 문제들로 행복지수가 급속히 낮아지고 있다. 세계 도처에는 전쟁과 테러의 소식이 들려오고 각종 매체에서는 경제 위기의 시론을 쏟아내고 있다. 경기침체로 인한 생활고로 절망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 참 힘든 시절이라는 하소연이 곳곳에서 흘러나온다. 너무 답답하고, 명쾌한 해답도 없는 현실이겠지만 그래도 마음속에 품고 있는 이상향이 있다면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나는 것처럼 힘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요즘처럼 힘든 때는 더욱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