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창구대구가톨릭대 교수·국제정치학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교수·국제정치학

새해 첫날에 발표된 김정은의 신년사는 비핵화협상과 관련해 북한이 어떠한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가를 잘 말해주고 있다. 그는 미국과 한국을 ‘두 개의 트랙(two track)’으로 분리해 미국에 대해서는 비핵화 이행에 상응하는 제재완화 조치를, 그리고 한국에 대해서는 유엔제재와 관계없이 남북경협의 가속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북미협상과 관련해서는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서 “언제든지 미국 대통령과 마주앉을 준비가 되어 있다”는 사실을 밝히는 한편, “미국이 우리의 인내심을 오판하면서 일방적으로 제재와 압박으로 나간다면 ‘새로운 길’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게 될 수도 있다”는 점을 함께 경고하고 있다. 이는 북미협상의 교착상태를 타개하려는 의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비핵화 과정에서는 북한이 주장하는 ‘양국 동시행동’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미국이 고수해 온 ‘선(先) 비핵화, 후(後) 제재완화’라는 정책의 변화를 촉구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이 고집할 경우 ‘핵·경제 병진노선’으로 다시 돌아갈 수도 있음을 경고하는 ‘강온 양면전략’이다.

반면에 남북협상과 관련해서는 한반도 전역에서의 적대관계 해소와 더불어 한미연합훈련 및 미군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의 ‘완전한 중지’를 요구하고 있다. 이는 작년 3월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방북했을 때 “김 위원장은 한미연합훈련이 연례적이고 방어적 훈련이라는 점을 이해했다”고 밝힌 것과는 다른 태도이다.

이러한 북한의 ‘투 트랙 협상전략’은 한미동맹의 균열, 남남갈등의 심화 등 한국안보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기 때문에 정부는 치밀한 대응책을 강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무엇보다 우려되는 것은 북핵 위협에 대응하는 한미동맹의 약화 내지 균열의 가능성이다. 중재외교를 자임하고 있는 문재인 정부가 북한이 요구하고 있는 제재완화에 동조하거나 남북경협을 가속화하기 위하여 미국의 양보와 협조를 요청할 경우 비핵화 공조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또한 김정은이 요구하고 있는 한미연합훈련의 전면중단에 대한 양국의 입장 차이를 조율해 나가면서 안보위협에 대처해야 한다. 게다가 최근 미국의 중간선거로 하원을 장악하게 된 민주당이 트럼프 대통령의 북핵 협상방식에 대해 제동을 걸고 나와서 향후 북미협상과정이 순탄치 않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한편 북한의 비핵화를 둘러싼 남남갈등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정부여당은 김정은의 신년사에 대해서 비핵화 의지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지만 야당은 실질적인 비핵화에 진전이 없으며 북한이 핵보유국임을 기정사실화 하려는 전략에 불과하다고 혹평한다. 남북경협과 대북지원에 대한 여당과 야당의 커다란 인식차이에다가 김정은의 서울 답방을 둘러싸고 일부 진보단체들의 ‘백두칭송위원회’ 결성과 이에 대한 보수 단체들의 격렬한 비판은 우리사회 남남갈등의 실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김정은의 투 트랙 전략은 한미갈등과 남남갈등의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에 정부는 향후 북핵 협상의 과정에서 한미공조와 국론통일에 각별히 유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특히 협상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미국은 대북제재가 계속되고 있기 때문에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속도조절론’을 피력하고 있고, 북한은 협상의 장기화에 대비하여 ‘자력갱생노선’을 신념화할 것을 또 다시 선동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우리 정부가 북미협상의 촉진자로서 중재외교를 더욱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할 필요성을 말해주는 동시에 만약 북한의 비핵화가 우리의 의도대로 진전되지 않을 때를 대비한 ‘플랜B’도 함께 강구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국제협상은 성공할 수도 실패할 수도 있으며, 국가안보전략은 이 두 가지 가능성에 모두 대비하는 것이 기본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