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현직언론인이 청와대에 바로 오는 걸 비판한다면 비판을 달게 받을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언론인 가운데 공정한 언론인으로서 사명을 다해온 분들은 하나의 공공성을 살려온 분들이라 생각하며, 이런 분들이 청와대로 와서 공공성을 잘 지킬수 있게 해주는 것은 좋은 일이라 생각한다.”

신년기자회견이 열린 10일 오전,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참모 인사에 대한 질문에 내놓은 궁색한 답변이다. 그러면서 문 대통령은 “지금 정부는 권언유착 관계가 전혀 없다고 자부하고 있고, 청와대의 정신이 늘 이렇게 긴장하면서 살아있기를 바라며 유능한 인재들을 모신 것이라고 양해해주길 바란다”고 했다.

야당이 현직 언론인을 청와대 참모로 영입한 것을 ‘내로남불의 전형’이라고 비판하고 나선 것은 나름 근거가 뚜렷하다. 특히 김정재 한국당 원내대변인이 낸 ‘한겨레신문 선임기자 출신 청와대 국정홍보비서관, 참담하다’는 제목의 논평이 화제다. 이 논평이 한겨레신문의 2014년 2월 7일자 ‘KBS 앵커 출신 청와대 대변인, 참담하다’는 사설 제목을 패러디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한겨레신문은 민경욱 의원의 청와대 입성을 놓고 “권력에 대한 감시를 가장 큰 본업으로 삼아야 할 현직 언론인이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곧바로 ‘권력의 입’으로 말을 바꿔 타는 행태는 일그러진 언론의 단면을 보여준다. 이번 일로 그와 그가 속했던 한국방송뿐 아니라 언론계 전체가 욕을 얻어먹게 된 것은 참담한 일”이라고 비판했다. 이를 되받아서 김 대변인은 “권력에 대한 감시를 가장 큰 본업으로 삼아야 할 현직 언론인이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곧바로 ‘권력의 나팔수’를 자청하는 행태는 일그러진 언론의 단면을 보여준다”고 비판했다. 신년기자회견을 지켜본 많은 이들도 최고권력기관인 청와대가 내로남불의 정치학에 너무 익숙해져 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를 내놨다. 그런 와중에 노영민 신임 대통령 비서실장이 청와대에서 춘풍추상(春風秋霜)을 첫 인사말로 내놓은 것은 매우 공교롭다 못해 기이한 일이다. 춘풍추상은 중국의 명언집 ‘채근담(菜根譚)’에 나오는 ‘대인춘풍 지기추상(待人春風 持己秋霜·다른 사람은 봄바람처럼 대하고, 나 스스로에겐 서릿발처럼 엄하게 대하라)’란 말에서 나온 사자성어로 내로남불과는 정반대다. 노 비서실장은 “청와대 비서실을 둘러보니 방마다 춘풍추상 액자가 걸려 있더라. 그런 생각으로 일하자”고 했지만 ‘내로남불’시비로 시작한 2기 청와대가 얼마나 분위기를 바꿀 수 있을 까.

지난달부터 유튜브 등을 통해 문재인 정부의 적자국채 발행 지시 등을 폭로한 뒤 자살을 기도했던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에 대한 정부여당의 태도만 해도 내로남불의 전형이다. 지난 정부 시절 민주당은 공익신고자를 보호하기 위해서 요건을 완화시키자고 주장했는데, 이제 정권을 쥐니까 엄격하게 해석을 하고 공익신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현 정권을 비판하는 제보는 비밀누설이고 전 정권에 대한 제보만 공익제보로 보겠다는 것 아니냐”는 따가운 비판에는 묵묵부답이다.

설을 앞두고 이뤄질 개각에서도 한바탕 몸살이 예상된다. 그동안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인선해 내놓은 입각대상자들에게 민주당이 야당시절 결정적 하자로 꼽았던 각종 문제들이 적지않게 발견됐기 때문이다. 이같은 청와대의 내로남불 행태가 계속될 경우 문 대통령의 국정지지율은 급전직하로 떨어지고, 내년 총선에서 큰 역풍을 맞게될 것이란 전망이 많다. 더구나 소득주도성장과 최저임금정책 등으로 경제가 어려워졌는데도 포용경제로 체질을 바꾸는 과도기라며, 경제정책기조를 바꾸지 않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불통 역시 매우 걱정스런 대목이다. 불통과 내로남불이 판을 친 신년 기자회견을 지켜본 국민들에게 뭐라 위로의 말을 전해야 할지 가슴 답답한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