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영 남

‘아버지’란 이름으로 나는 밀린 잠을 못자고 일찍 일어나야 한다. 앞집 마로니에 잎의 아침을 좁은 식탁에 초대해 놓고 쌀을 씻어야 한다. 밖으로 나가 토끼집의 안부를 묻고 들어오면서 현관의 신발들을 가지런히 통솔해야 한다. 그러곤 아내의 출근을 돕는다.

(…)

그러나 매일매일 상도동 7-4번지 대문을 여는 순간! 우리 집에는 아버지만 있고 어머니가 없다. 가사를 대충 돌보는 푸줏간 뚱뚱보 아줌마만 있고, 아이들 어머니가 없다. 세상 걱정 없이 잠을 즐기는 김 회장 사모님만 있고 나의 여자가 없다. 아! 꿈꾸는 나의 집이 없다. 나의 파랑새도 나의 실존주의도 죄다 날아가고 없다

시인이 엮어가는 시의 얘기를 따라가다보면 웃음도 나오고 박진감을 느낄 수 있다. 자신을 객관화하여 이름과 역할만 있고 진정한 자기 자신의 존재감은 없는 냉혹한 상황을 토로하는 시인의 목소리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자신을 한번쯤 돌아보게 하는 작품이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