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7년 유럽에서 발생한 흑사병은 유럽 인구의 절반 가까운 사망자를 내는 등 유럽 사회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유럽 인구가 다시 원상태로 회복되는 데만 200여 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문명사적으로는 수많은 예술가가 사라지면서 문화적 후퇴는 물론 노동력 감소에 따른 사회적 문제도 유발했다.

인류는 우리를 위협했던 흑사병과 콜레라, 결핵, 오늘날의 에이즈까지 과학기술의 힘으로 극복해 냈다. 인류가 창출한 과학의 힘은 불가능한 영역이 없을만큼 유용한 수단으로 활용돼 왔다.

그러나 단 하나 현대 의료의 기술로 극복해 내지 못하는 질병이 있다면 바로 암(癌)이다. 발병 원인조차 명확히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불과 3년 동안 수천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흑사병보다 더 많은 사람이 이 병으로 희생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한해동안 880만 명(2017년)이 숨지고 그 수는 줄지 않는다. 우리나라 사망 원인 1위도 암이며 한해 7만여 명, 전체 사망자의 27.6%가 이 병으로 숨진다.

‘불치의 병’이란 오명이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 병이다. ‘만병의 황제’로 통한다. 인류에게는 여전히 속수무책인 병으로 인식된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현대 의료기술이 가져온 장수(長壽)에 대한 운명적 저주란 표현도 나온다.

그러나 무모할 줄만 알았던 암과의 전쟁에서 조금의 진전은 있었다. 복지부가 최근 낸 자료에서 암 5년 초과 생존율이 처음으로 50%를 넘어섰다. 전체 암유병 환자의 52.7%가 5년 이상 생존한 것이다. 암은 다른 질병과 달리 5년 생존율이란 표현을 쓴다. 일반적으로 암환자는 수술 후 5년 생존하면 재발할 확률이 낮다고 보고 완치 판단을 하기 때문이다. 사전 예방과 조기진단 등으로 효과를 보고 있다.

인류는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투쟁해 왔다. 그것이 자연이 준 재앙의 수준일지라도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흑사병이 발생할 14세기 무렵 유럽 사람의 평균 나이는 35세에 불과했다. 갖은 질병이 인류의 수명을 제한했으나 인간은 이를 극복하고 장수시대를 열었다. 매년 암 발생률이 증가세에 있으나 상대적으로 생존율도 높아진다는 것은 암과의 싸움을 잘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우정구(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