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홍 평전’
정윤재 지음·민음사 펴냄
인문·2만3천원

독립운동가이자 언론인, 학자로서 한국 근현대사를 이끈 ‘고절(高節)의 국사(國士)’ 민세 안재홍의 삶을 그린 ‘안재홍 평전’(민음사)이 출간됐다.

한국 정치사상 연구에 매진해 왔으며 안재홍 연구의 권위자이기도 한 정윤재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대한제국기, 일제강점기, 해방 직후의 질곡을 거치며 민족의 독립와 통일민족국가 건설에 힘썼던 안재홍의 삶을 통해 고결한 정치 리더십의 전범을 보여 준다. 이 책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전에 최초로 독도 현지조사를 실시한 내용 등 안재홍에 대해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을 고루 담았으며, 단순히 생애를 전달함에 그치지 않고 두 편의 논문(‘1930년대의 안재홍의 문화건설론 연구’, ‘안재홍의 ‘신민족주의’ 역사의식과 평화통일의 과제’)을 통해 안재홍의 정치사상에 대한 이해를 도왔다.

1891년(고종 28년)에 태어나 구한말의 기울어 가는 국운과 불안한 시국 속에서 청소년 시절을 보낸 안재홍은 일찍이 글로써 세상을 놀라게 하겠다는 문장명세(文章鳴世)의 뜻을 세웠다. 주권을 빼앗긴 엄혹한 시대에 그는 시대일보 논설위원과 조선일보 주필, 부사장, 사장을 거치며 직설탁견(直說卓見)의 날카로운 논설로 일제를 비판하고 청년외교단사건, 신간회 창립, 물산장려운동과 민립대학설립운동, 조선어학회사건 등에 관여하며 정치·사회·문화 다방면에서 국내 항일운동의 맥을 이어 갔다. 해방 후에는 조선건국준비위원회(건준) 부위원장, 국민당 당수, 좌우합작 위원, 남조선과도입법의원 의원, 미군정의 민정장관, 한성일보 사장 등으로 활약하며 분단 시대의 고단한 정치 과정에서 통일국가의 건설을 위해 진력했다. 그러나 민족의 평화통일과 진정한 민주주의 확립을 위한 안재홍의 정치 활동은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당선 후 얼마 지나지 않아 6·25전쟁 발발과 뒤이은 납북으로 중단되고 말았다.

1965년 3·1절에 눈을 감을 때까지 안재홍의 일생은 진보적 민족주의자로 일관된 삶이었다. 그는 일제 치하에서부터 여타 많은 보수적 인사들과 달리 공산주의 세력과의 접촉도 두려워 않은 참된 민족주의자였다. 민족자주 노선을 기반으로 한 안재홍의 민공협동(民共協同) 노력은 1920년대 신간회 활동과 해방 후 건준 및 좌우합작위원회 참여로 나타났다. 또 그는 미군정기에 어지간한 정치인이라면 모두 꺼려한 민정장관으로 일하면서 극좌와 극우를 배제하는 민족진영 중심의 통일국가 건국을 기도했다. 납북된 후에도, 그를 대남 정치 공세에 활용하고자 하는 북한 정권의 계속된 간섭과 압력에 굴하지 않고 “나는 진보적인 민족주의자로서 여생을 생활하여야 할 것”이라며 자신의 이념을 지켰다. 이로정연한 논리와 언행일치한 처신으로 오로지 민족의 자주와 통합을 바랐던 그의 삶은 분열과 갈등을 좀체 극복하지 못하는 현재의 한국 정치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납북된 많은 인사들이 그렇듯이 안재홍도 분단의 파고에 휩쓸려 한동안 제대로 논의되지 못했다. 1970년대에 들어서야 안재홍의 저술을 모으는 작업이 추진되고 1970년대 후반 해방 전후사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정치학, 역사학, 언론학, 사회학, 교육학 등 여러 분야에서 안재홍을 연구한 논문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 책의 저자인 정윤재 교수 역시 일찌감치 안재홍 연구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은 이래 30여 년간 안재홍과 관련한 다수의 자료를 발굴하고 수합해 그의 활동과 사상을 분석해 온 정치학자이다. 저자는 지금까지 행해진 조사와 연구를 망라해 언론인으로서, 항일운동가로서, 그리고 국사학자로서 안재홍의 생애를 촘촘히 조명하며, 국제적 민족주의론과 다사리이념으로 대표되는 정치사상가로서의 면모를 부각하고 있다.

민세 안재홍
민세 안재홍

안재홍의 국제적 민족주의론과 다사리이념은 해방 이후의 혼란스러운 정국에서 좌파 급진 혁명을 제어하고 친일 협력자들의 정치 독점을 방지하기 위해 제시한 것이었다. 당시 국제공산주의운동과 일제의 황민화 정책에 대한 비판적 대응에서 비롯한 ‘국제적 민족주의’는 정치적 자주독립과 문화적 독자성을 전제로 하는 국제 교류와 이를 통한 세계 평화의 구현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또한 ‘다사리이념’은 “모두를 다 사리어(말하게 하여) 정치에 참여케 하는” 정치 방식으로서의 진백(盡白)과 “복지를 증진시켜 모두를 다 살리는” 정치 목표로서의 진생(盡生)의 가치를 묘합해 한국 민주주의 정치 과정을 질적으로 향상시키고자 한 시도였다. 이러한 독자적 사상을 바탕으로 통일된 민주공화국 건설을 위해 분투한 안재홍은 민족 구성원 모두를 건강한 공동체로 끌어안고자 했던 ‘순정우익(純正右翼)’, 즉 순수하고 바른 우익의 모범을 보인 정치 지도자이자 사상가였다.

/윤희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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