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경의선 철도 북측 판문역에서 열린 ‘동·서해선 철도·도로 연결 및 현대화’ 착공식은 좀처럼 풀어내기 어려운 숙제들을 무수히 남긴 또 하나의 짝다리 이벤트였다. 통상 ‘착공식’이라 함은 문자 그대로 ‘공사를 착수하는 의식’을 말한다. 그 성격이 하도 이상하다 보니 문재인 대통령은 ‘착수식’이라는 희한한 용어를 쓰기도 했다. 산적한 난제들이 만만찮다. 정부의 대북 정책은 날이 갈수록 ‘모험’을 넘어 ‘도박’의 수준으로 치닫고 있는 느낌이다. 착공식에는 남북이 각각 100여 명씩 참석했다. 남측에서는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과 조명균 통일부 장관,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등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야 3당 원내대표 그리고 건설업계에서 유주현 대한건설협회 회장 등이 함께했다. 북측에서는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장과 김윤혁 철도성 부상 등이 대표로 참석했다.

한국당이 이번 착공식에 불참한 것은 정부가 착공식을 비롯해 관련 예산 내역을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정부는 내년도 예산안에 편성한 남북협력기금 예산 약 1조 원 중 65% 규모의 사업 내역을 비공개로 지정한 바 있다.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사업 자체의 현재는 물론 미래의 불투명성을 지적하며 “착공식을 가불한 셈인데, 국가의 격이 이래도 되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힐난했다.

이번 ‘남북 철도·도로 착공식’은 상당히 특이하다. 착공식은 했는데 뭘 공사하는지가 불명확하다. 준비작업이라야 북한의 경의선과 동해선 구간에 대해 대부분 육안으로 철도 상태를 확인한 정도다. 무엇보다 어느 수준까지 북한 철도를 현대화할지 합의된 바도 없다. 도로도 한두 차례 현장 조사를 했을 뿐 어느 구간을, 어떤 수준으로 개량할지 분명치 않다. 착공식 대신 ‘착공 기원식’ 정도가 맞는 게 아니냐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판이다. 굳이 이해하려고 하자면 꽉 막힌 북미대화와 김정은 방남 문제 등 남북관계의 교착상태를 해소하고, 북한의 대화보이콧 선언을 막아보고자 하는 안간힘 차원이 아니겠는가 헤아릴 수는 있다. 어쨌든 우리라도 약속을 지킨다는 입장을 증명하는 정도로 해석된다.

그러나 대북제재의 빗장을 용케 걷어낸다고 해도 천문학적 비용에 대한 현실적인 불안은 남는다. 한국교통연구원은 노무현 정권 시절인 2005년에 경의선 복선전철화에 9조1천억 원, 동해선 단선 전철화에 10조 원이 들어간다고 계산했다. 13년이 흐른 지금은 어느 정도인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대형화물이 급격히 줄어든 상황에서 경제성 여부도 의문투성이다. 한국당 등 보수진영의 날 선 비판처럼 이번 이벤트가 부디 진보정권의 정치적 목적이 앞선 또 하나의 억지 쇼가 아니길 진심으로 빌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