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주한동대 교수
김학주 한동대 교수

2018년 LA다저스와 두산베어스는 비슷한 모습을 보였다. 최정상에 한 발 못 미쳤다. 두 팀 모두 막강한 전력을 가졌다. 그러나 공통적으로 아쉬운 것은 생각없이 야구를 하는 장면이 종종 보인다는 것이다. 두 팀 선수들의 스윙 스타일은 ‘있는 힘껏’ 휘두르는 것이다. 걸리면 넘어간다. 그러나 그 결과의 변동성이 크다. 승부를 결정하는 순간에도 타협은 없다. 이기기 위해서는 확률을 생각해야 하는데 말이다. 심지어 체구가 작은 선수들도 그들의 몸집 이상으로 휘두른다.

투수들 가운데도 이런 모습을 볼 수 있다. 시속 145㎞를 던질 수 있는 선수가 150㎞를 욕심낸다. 팔에 힘이 들어가서 초속은 빨라 지지만 공이 타자를 지날 때의 종속은 떨어진다. 체중을 공에 싣지 못하기 때문이다. 타자들은 이런 공을 가장 잘 대처할 수 있다. 공이 빨라 보이지만 자신 앞에서는 느리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투수에게 시속 145㎞의 공을 원하는 곳에 던질 수 있는 능력이 훨씬 중요함을 깨닫지 못하고 쓸데 없는 힘을 쓰다가 도태되는 선수들을 많이 봤다.

한국의 여자골프는 세계를 제패했다. 그런데 그 가운데 ‘닥공’이란 별명을 가진 선수들도 있다. 닥치고 핀을 향해 공을 쏜다는 의미다. 그만큼 공을 때릴 수 있다는 자신감일 것이다. 그러나 무모한 위험을 선택하는 꼴이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당연히 성적은 들쭉날쭉할 수 밖에 없다. 그만큼 선수의 가치는 떨어진다. 성과란 일관성이 있을 때 신뢰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은 냄비 근성이 있다고 한다. 순발력이 있어 보일지는 모른다. 그러나 준비성이 없는 부분이 훨씬 더 큰 화를 부른다. 실수를 자주 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이 보다 더 큰 문제는 비전(vision)을 품지 못한다는 것이다. 전략을 세우며 꿈을 이뤄가는 연습과정이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닥쳐야 일을 한다는 것이다. 한국인은 지난 50년 ‘한강의 기적’을 만들었다. 놀라운 생산성 덕분이다. 그런데 꼭 나라가 일제에 의해 강점되고, 전쟁으로 박살 나서 눈이 뒤집혀야 그런 힘이 나오는가?

역사적으로 왜 한국인은 전략을 준비하는데 취약할까? 계층이 많은 조직을 가졌기 때문으로 판단된다. 이런 환경에서는 늘 윗사람의 눈치를 보며 의존적일 수 밖에 없다. 자율을 기대할 수 없으니 새로운 부가가치의 창조를 기대할 수 없다. 설령 창조적인 생각들이 잉태되어도 차단될 확률이 높아진다. ‘모난 돌이 정 맞는’ 분위기가 조성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인들은 순종적인지 모르겠다. 그래서 주입식 교육이 사라지지 않는 것일까? 한국에서 기독교가 크게 부흥한 이유도 여기에 있는지 모르겠다. 그것은 커다란 축복이 됐지만 말이다.

과거 재벌은 탁월한 기업가를 지도자로 가진 덕분에 일사불란하게 한 곳으로 힘을 모을 수 있었다. 해야 하는 일들이 정해진 상황에서는 ‘속도’라는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동안의 성장을 뒤로 하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야 한다. 창조는 내가 주인이어야 가능하다. 주도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재벌이라는 조직이 더 이상 작동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재벌을 해체하라. 고름을 짜라는 것이다. 왜 정부는 재벌의 폐단을 지적하며 재벌의 팔만 비틀고 있는지 모르겠다. 뭘 기대하는 것일까?

냄비근성이 있는 한국인에게 ‘급진’이라는 말이 어울려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준비 없는 급진은 버려야 한다. 일관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거기에는 원칙이 있고, 앞으로 그런 성과를 반복적으로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끔 천재성 있는 직원들을 만났다. 그러나 그 천재성만 이용했다. 정말 중요한 일은 흔들림없이 일관성 있는 성과를 낼 수 있는 직원에게 맡겼다. 그들에게는 새로운 꿈을 준비하는 태도와 실행 전략이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