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

자본주의의 가장 나쁜 형태가 빈익빈(貧益貧) 부익부(富益富)의 극단적인 양극화 현상일 것이다. 인간사회에는 강자와 약자가 있게 마련인데, 자유경쟁을 시켜놓으면 갈수록 격차가 벌어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맨손으로 경쟁을 해도 그럴진대, 잘나고 강한 자들은 최상의 조건을 두루 갖추었는데 약하고 못난 자들은 맨손으로 경쟁해야 한다면 그것은 애당초 경쟁이랄 것도 없는 일이다. 백 개를 가진 자에게 단 하나 가진 것까지 빼앗길 수밖에 없는 것이 자본주의 자유경쟁의 속성인 것이다.

그 대안으로 나온 것이 공산주의였다. 모든 재산을 공동의 소유로 하면 서로 많이 갖겠다고 경쟁하고 다투는 일이 없어지고 빈부의 차가 없이 평등할 거라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기왕에 많이 가진 자들이 순순히 자기 것을 내놓을 리가 없으니 노동자와 농민들이 들고 일어나서 자본가나 지주들을 처단하는 프롤레타리아혁명이 요구된다는 거였다. 그 과정에서 당연히 엄청난 피의 숙청이 따랐다. 소련에서만도 공산주의혁명을 거치면서 무려 이천만 명의 숙청이 있었다고 한다.

공산주의를 표방했던 대부분의 나라들이 한 세기를 넘기지 못하고 스스로 공산주의를 포기하고 자본주의를 선택했다. 공산주의이념은 하나의 이상이었을 뿐, 공산주의국가란 실재로 인간들이 실현해 낼 수 있는 바람직한 체제가 될 수는 없다는 사실이 판명된 것이다. 북한의 경우는 공산주의체제라기보다는 예외적이고 극단적인 독재군주체제라고 해야 할 것이다. 모든 생명체가 생존경쟁과 적자생존을 통해서 역동적인 생태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고 질서인 것처럼, 공산주의의 몰락은 인간이란 본질적으로 자유경쟁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예가 될 것이다.

이미 자연의 질서를 벗어나버린 인간들은 강자와 약자가 공존하는 방법을 끊임없이 모색할 수밖에 없다. 강자들이 가진 과도한 욕망과 약자들의 결핍과 상대적 박탈감을 어떻게 중재하고 해결할 것인가가 자본주의 국가의 우선과제이다. 그것은 분명 선악의 문제는 아니다. 지주와 자본가를 농민과 노동자의 적이요 타도의 대상으로 규정한 공산주의 혁명은 끔찍한 피바람을 일으키고 몰락할 수밖에 없었다. 강하고 잘난 자들만 날뛰고 설치는 세상이 되어서도 안 되겠지만, 그렇다고 강하고 잘난 자는 악하고 약하고 못난 자는 선하다는 이분법적 발상도 백해무익한 억지일 뿐이다.

비정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자연의 법칙은 어디까지나 강한 자의 편이다. 그것이 적자생존의 법칙이요 약육강식의 질서다. 그래서 생태계는 건강성을 유지하고 진화하는 것이다. 다만 문명화된 인간사회에다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의 법칙을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인간사회는 자연의 법칙이 아니라 인위적인 규범과 제도에 의해 움직이는 집단이기 때문이다. 자연의 생태계에서는 아무리 강한 자라 하더라도 절대로 필요이상을 소유하는 법이 없는데 비해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기 때문에 조절과 제재가 요구되는 것이고 제도와 법규가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법과 제도 이전에 인간의 양식이 건전해야한다. 강하고 잘난 사람은 남이야 어떻게 되든 저 혼자만 잘 살겠다는 욕심이 반사회적이고 반인륜적이라는 걸 알아야 한다. 남보다 우수한 능력을 마음껏 발휘하되 저도 잘 살고 남에게도 도움을 주어야 한다. 그래야 사회가 건강해지고 동시에 자신의 안위도 보장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약하고 못난 사람은 제 분수에 맞게 살아야 한다. 가진 자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 때문에 무조건 불평불만과 적개심을 가지는 것은 사회를 해치고 스스로를 파괴하는 행위일 뿐이다. 인간이란 반드시 많이 가졌다고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며,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소박하고 청빈한 가운데 오히려 보다 많은 자유와 평안이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