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한동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북한은 공산정권 수립 초부터 반제국주의를 투쟁목표로 설정했다. 그들은 미군이 참전한 6·25 전쟁 이후에는 내부 결속용으로 ‘미제투쟁과 타도’를 전면에 내걸었다. 북한은 힘이 지배하는 국제정치의 현실 앞에서 통미봉남(通美封南)으로 외교 전술을 바꾸기도 했다. 그러나 미국은 북한당국의 통미(通美)정책을 사실상 인정치 않았다. 북한 김정은 정권은 지난 1월 평창올림픽 참가를 계기로 ‘통남통미’로 전술을 바꿨다. 북한당국이 핵보유국임을 선언한 후의 정책전환이라 아직도 반신반의하는 사람도 많다. 북한의 통미통남 정책은 성공할 것인가.

우선 북한의 통남(通南) 정책부터 점검해 보자. 문재인 정부의 3차례의 남북 정상회담은 남북관계의 상당한 진전을 초래했다. 남북의 군사회담도 상당한 수준의 합의에 도달했다. 남북이 각기 10개의 경계 초소를 폐쇄하고 남북 초병들의 DMZ 내에서 악수 장면은 매우 감동적이었다. 남북 예술인들의 서울과 평양 공연, 스포츠에서의 단일팀 출전이 계속되고 있다. 남북 철도와 도로 연결 착공식이 예정되어 있고, 인도적 대북지원도 재개될 전망이다. 이만하면 북한의 통남 정책은 가시적 성과를 거둔 셈이다. 북한이 통남정책을 적극화한 배경에는 문재인 정부의 대북화해 정책에 대한 그들의 호응이지만 그것이 통미(通美)로 나아가는 첩경이라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 북한의 통미정책은 속도는 느린 것같지만 불가역의 길로 들어선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싱가포르의 북미 정상회담은 비핵화의 원칙에 합의한 역사적인 성과이다. 2차 북미 정상회담은 해를 넘기고 있지만 트럼프는 두 달 이내 개최한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북미 간에는 아직도 상호 입장의 간극이 크다. 미국은 북한에 대해 완전한 비핵화 목록을 요구하고, 북한은 대북 제재 완화를 우선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북한은 미국에 비핵화의 대가로 대미 평화협정 체결 등 관계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미국은 오히려 대북 제재의 강도를 높이면서 유엔의 대북 인권결의를 통해 북한을 압박하고 있다. 이처럼 북미 간 입장 조율이 되지 않을 때 북미 관계는 서행할 수밖에 없다.

북한의 통미 정책은 궁극적으로 성공할 것인가? 현 상황에서 북한의 통미통남 정책은 급진적인 성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남북 및 북미 간에는 아직도 냉전의 불신감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미국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의 시험발사가 중단된 상황에서 협상을 서두를 필요는 없다. 트럼프의 중간 선거의 하원 패배, 대북외교의 강온 대립, 군산 복합체의 요구, 북한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 등이 북미 협상을 지연시키고 있다. 북한 역시 미국과의 제재 완화를 위한 협상은 원하지만 북한체제 안전이 결여된 협상은 북한만 무장해제 당한다는 입장이다. 이것이 북한 당국이 최근 미국과의 실무 회담마저 거부하는 이유이다. 이러한 양측의 팽팽한 입장 차이는 결국 기 싸움으로 연결돼 미북 교착 국면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정황이 북한의 통미가 통남보다 느린 이유이다. 북한 당국이 대미 협상을 통한 통미에 성공하려면 다음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먼저 북한은 미국의 실리 외교를 철저히 파악해야 한다. 북한은 뉴욕주재 UN 대사 등 서방의 제한된 외교력만으로 미국과 트럼프를 이해할 수 없다. 북한은 이제 과거의 대미 ‘벼랑 끝 외교’를 탈피하고 트럼프식 실리 ‘장사외교’를 인식해야 한다. 북한당국은 과거와 같은 호언장담이나 협박, 기만적인 술수 외교가 통하지 않음도 알아야 한다. 북한은 보다 진정성 있는 핵 포기 프로그램을 제시하면서 미국을 잘 설득할 필요가 있다. 물론 미국의 대북 외교도 북한의 신뢰를 획득해야 한다. 앞으로의 2차 북미 정상회담은 북미 관계 개선의 시금석이다. 중재자를 자처한 우리 외교도 이러한 정황을 철저히 분석하고 고려하여 북미 양측을 잘 설득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