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정봉영 남구청장 31일 퇴임
“고향 장기면 근무시절 생생
도움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

정봉영<사진> 남구청장이 오는 31일을 끝으로 40여년의 공직생활을 마무리한다.

남구민들의 가장 든든한 도우미로서 역할을 다한 정 남구청장은 “길고도 짧은 공직생활이었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친구를 따라 얼떨결에 공무원시험을 보게 된 정 남구청장.

생각지도 못하게 덜컥 합격한 그는 당시의 심정을 이렇게 떠올렸다.

그는 “농사를 짓는 부모님께 빨리 돈을 벌어서 고기반찬, 따뜻한 옷을 사드리고 싶은 마음이 컸고 그 꿈을 이루게 돼 기뻤다”고 말했다. 하지만 공무원 생활은 녹록치 않았다. 가장 큰 걸림돌은 박봉. 당시 초봉이 7만8천원이었는데 양복 한 벌에 10만원, 쌀 80㎏에 8만원 하던 시절이라 열악했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얻은 점도 있었다.

박봉을 통해 근면·검소를 몸에 익힌 것이 지금 돌이켜 보면 큰 자산이 됐다.

그에게 있어 특별히 기억나는 공직생활 일화는 고향땅에서의 활약이다.

2010년 고향인 장기면에서 면장을 맡게 됐는데 다음해 2월 눈이 쏟아졌다.

새벽부터 일어나 제설작업에 고민하던 그는, 장비·인력이 부족해 제설진도가 나아가지 않자 급히 해병1사단에 요청해 제설장비 2대를 추가확보했다.

직접 현장에서 통솔과 격려를 도맡으며 결국 성공적으로 작업을 마치자 “초기대응을 잘했다”는 주민들의 칭찬을 들을 수 있었다. 그는 고향에서, 책임을 다했던 공무를 통해 좋은 성과를 거둔 그때 기억이 지금도 뿌듯하고 생생하다.

좌우명은 ‘지자불언 언자부지’(知者不言 言者不知).

도덕경의 한 구절이다.

아는 자는 말하지 않고 말하는 자는 알지 못한다는 뜻의 이 구절을 통해 중용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공무원의 덕목이라고 그는 재차 강조한다.

이 같은 원칙이 지금까지 공직생활을 이어가게 한 원동력이었을까.

공직생활에 방점을 찍게 된 그에게도 아쉬운 점은 한두가지가 아니다.

부하직원인 그의 의견을 진중하게 귀 기울여 들어줬던 고(故) 정장식 포항시장을 먼저 떠나보낸 일과 현재 재임 중인 이강덕 포항시장의 시정을 돕는데에도 부족함이 없었는지 등이 그에게는 회한으로 남는다.

공직자에서 민간인으로 돌아가는 정 남구청장은 “고향인 장기면에서 농사짓고 그간 밀렸던 책도 맘껏 읽고 가족들과도 여행을 떠나며 시간을 보내겠다”며 “40여년 공직생활 간 많은 분의 도움이 있었다. 지면을 빌어서나마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고 말했다. /황영우기자 hyw@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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