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청와대 특별감찰반원 김태우 씨의 잇따른 폭로와 청와대의 해명 공방전 양상으로 번지던 ‘민간인 사찰 의혹’ 사태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청와대가 김태우 전 감찰관을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로 검찰에 고발한 가운데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김 씨가 수집한 것으로 추정되는 사찰 관련 리스트를 공개했다. 청와대도 박형철 반부패비서관이 직접 해명에 나서는 등 전면전 양상의 대전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나 원내대표가 공개한 리스트에는 친박(친박근혜)계 핵심 인물인 최경환 전 기재부 장관 비위 관련 현황을 비롯해 고건 전 국무총리의 장남 고진 씨의 비트코인 거래, 조선일보 취재 내용, 유동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재판거래 의혹 등 크게 11개의 문건이 담겼다.

코리아나 호텔 사장 배우자 자살 관련 동향, 전성인 홍익대 교수(진보 성향)의 VIP 비난 등에 대한 사찰 의혹 문건도 포함됐다.

김태우 전 특감반 수사관이 폭로한 내용을 살펴보면 일방적인 주장이거나 조작이라고 몰아붙이기에는 너무나 구체적이다. 이명박(MB) 정부 시절인 2012년 장진수 전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의 불법사찰과 증거 인멸 언론폭로가 떠오른다. 그때 여당인 한나라당은 ‘개인의 일탈’로 규정했고, 당시 민주통합당 박지원 원내대표는 “국정조사와 특검을 수용하지 않는다면 민주주의를 역행하는 이명박식 독재”라고 비판했었다.

당시 총선 후보였던 문재인 대통령도 “불법사찰은 국가의 기본을 무너뜨리는 행위다. 탄핵도 가능한 사안”이라고 날을 세웠다. 서울대 교수였던 조국 민정수석 역시 트위터에 “공직과 공무와 관련이 없는 민간인을 (사찰) 대상으로 삼는 것은 불법”이라고 썼다. 박근혜 정권 때 ‘정윤회 문건’ 파동의 중심에 섰던 박관천 사건과도 유사해 기시감마저 강하게 느껴진다. 권력이 달 가리키는 손가락 부러뜨리려고 작정하는 모습까지 똑같다. 자유한국당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은 청와대가 ‘민간인 사찰 의혹’을 전면 부인하며 “(문재인 정부가)‘민간인 사찰의 DNA가 없다’고 하는 것은 오만이고, 선민의식”이라고 지적했다.

청와대의 오락가락 해명과 대응이 국민의 불신을 더 증폭시키고 있다. 처음에는 ‘미꾸라지 한 마리의 분탕질’이라며 개인적 일탈로 몰아가더니 정보에 함께 묻어온 ‘불순물’로, 그리고 이번엔 정보 수집이지 사찰은 아니란다. ‘적폐청산’이라며 전 정부 관련 인사들만 무수히 잡아 가두고 있는 현 정권이 똑같은 ‘권력 남용’을 저지르는 이율배반이라면, 이건 결코 보통 문제가 아니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의 행태는 ‘불법적’이거나 최소한 ‘무능’하다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게 된 상황이다. 솔직한 고백과 광범위한 인적 쇄신만이 유일한 돌파구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