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세상을 바라보는 눈에는 두가지가 있다고 한다. 바로 긍정적이고 좋은 마음으로 세상이나 남을 바라보는 ‘청안’과 눈의 흰자위가 나오도록 남을 업신여기거나 부정적으로 흘겨보는 ‘백안’이 바로 그것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어떻게 다른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무학대사와 태조 이성계의 일화를 꼽을 수 있다. 무학대사가 기거하는 도봉산의 절을 찾은 태조 이성계가 무학대사와 곡차를 마시며 격의없이 지내자고 말한 끝에 문득 대사에게 농담을 걸기 시작했다.

“요즘 대사께서는 살이 뚱뚱하게 쪄서 마치 돼지같소이다.” 그러자 무학대사는 이렇게 대답했다. “소승이 돼지처럼 보이십니까? 전하께서는 언제 보아도 부처님처럼 보이십니다.” “아니, 격의없이 서로 농을 즐기자고 해놓고, 대사께서는 과인을 부처님같다고 하면 어쩝니까?”무학대사의 설명이 정곡을 찌른다. “돼지 눈으로 보면 이 세상 모든 것은 오직 돼지로 보이고, 부처님 눈으로 보면 모든 것이 오직 부처로 보이는 법이지요(豕眼見惟豕 佛眼見惟佛 시안견유시 불안견유불)” 이 태조는 크게 한방 먹었다며 껄껄껄 웃고 말았다는 얘기다.

불교 경전에는 일수사견(一水四見)이란 말이 나온다. 같은 물이라도 천계에 사는 신은 보배로 장엄된 땅(天見是寶嚴地)으로 보고, 인간은 마시는 물(人見是水)로 보고, 물고기는 보금자리(魚見是住處)로 보고, 아귀는 피고름(餓鬼見是膿血)으로 본다는 것이다. 이기적인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보고싶은 것만 보고, 믿고싶은 것만 믿기 때문이다. 결국 사람은 자신이 보는 시각대로 세상을 보고 살아간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심판을 둘러싼 평가가 엇갈리는 것 역시 사람들마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다르다는 좋은 사례다. 탄핵을 외친 사람과 죄가 없다며 탄핵기각을 주장한 사람의 견해는 하늘과 땅처럼 다르다. 박 전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에 의한 탄핵심판을 통해 대통령직을 잃고, 영어의 몸이 된 지금도 광화문 태극기모임에 나오는 수만명의 지지자들이 몰려나와 박 전 대통령의 석방을 외치고 있는 것을 보면 무언가 다시한번 되짚어봐야 할 이유가 있지않나 생각을 해보게 된다.

최근 전 청와대 민정수석실 특별감찰반인 김태우 수사관과 청와대간에 벌어지고 있는 진실게임 역시 어떤 시각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다르게 보일 수 있다.

청와대는 이 사건에 대해 처음부터 격렬한 반응을 보였다. 평소 냉정하고 차분한 팩트위주의 논평을 내오던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지난 18일 브리핑에서 청와대 민간인 사찰 의혹 관련 언론보도를 조목조목 반박하면서 말미에 “문재인 정부의 유전자에는 애초에 민간인 사찰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못박았다. 청와대의 결백을 강조하려 했는지 몰라도 낮은 자세로 소통해야 할 사안에 오만하게 대응한다는 반발을 샀다. 이에 앞서 윤영찬 국민소통수석은 기자들에게 보낸 메시지를 통해 “궁지에 몰린 미꾸라지 한 마리가 개울물을 온통 흐리고 있다”고 말해 논란을 부추기기도 했다. 이후 김 대변인은 19일 브리핑에서 이같은 논란에 대해 “더 이상 대응하지 않겠다”면서 “언론도 이제 더이상 급이 맞지 않는 일 하지 말자”고 목청을 높여 언론의 눈총을 샀다. 이에 대해 김 수사관은 “내 첩보 보고서에 대한 청와대의 해명은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재반박했다. 그는 민간인 사찰논란이 되는 첩보를 자신만이 아니라 다른 특감반원들도 청와대 첩보양식에 맞춰 많이 썼다고 주장했다. 이제 공은 검찰에 넘어갔지만 진실게임의 승패가 가려질 지는 의문이다.

어쨌든 세상을 바라보는 두 가지 눈은 내가 옳고, 상대가 그르다고 얘기하지 않는다. 다만 똑같은 사안을 놓고 서로 다른 의견을 보일 때, 둘 중 하나가 틀린 게 아니라 서로 다르다는 걸 인정하는 게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게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정치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