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은 락엽이 아니다’

리희찬 지음·아시아 펴냄
장편소설·1만8천원

북한 최고의 드라마 작가 리희찬의 ‘단풍은 락엽이 아니다’(아시아)는 김정은 시대의 부모 자식 간 세대론적 갈등을 다룬 작품이다.

리희찬은 북한의 영화 시나리오 전문 창작기관인 조선영화문학창작사 사장을 지냈고, 북한은 물론 중국에서도 번역 제작돼 유명한 영화문학 시리즈 ‘우리 집 문제’의 저자이기도 하다. 웃음 속에 신랄한 비판, 특색 있는 교훈을 주며 북한의 ‘가정혁명화’에 큰 역할을 했다고 평가되는 이 작품은 북한 사람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위상을 지니고 있다고 전해진다.

‘단풍은 락엽이 아니다’는 일기장을 통한 소통과 교감, 자유주의와 놀새 등의 표현, 지배인 아들의 대학 진학 문제, 청년동맹원들의 우정과 사랑, 정년을 앞둔 은퇴(명예퇴직) 문제, 돈의 양면성, 공적 모범과 사적 기대가 충돌하는 가정교육 문제, 야근을 반복하는 과잉 노동, 사회주의 사회의 위계화된 구조 등 김정은 시대 다면적 표정의 북한식 사회주의 현실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소설은 2011년 가을에서 2012년 가을까지를 주 배경으로 하며, 급양관리국에서 인민생활 향상이라는 당의 호소를 받아들여 돼지목장 확장공사를 진행하면서 동맹위원장 기옥과 창고원 경식의 만남이 이어지고 인격을 둘러싼 계도와 연애담이 그려진다. 부부의 사랑의 결실인 자식을 눈먼 부모가 잘못 양육함으로써 발생하는 가정교육의 문제를 다루고 있기도 하다. 기옥과 경식의 우정과 연애 감정을 밑바탕에 깔고 있지만, 결과적으로 외동아들인 경식의 자유주의적 기질을 그의 부모인 홍유철과 진순영이 방치함으로써 그릇된 인격을 형성하게 만들었음을 깨닫는 각성 구조를 그린 것이다.

이 소설은 긍정적 인물이었던 홍유철과 진순영이 작품 초반부를 넘어서면서 자식을 과잉보호하는 부정인물로 그려진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고상한 인물의 무갈등적 캐릭터를 형상화했던 기존의 방식에서 벗어나 다양한 성격의 변화를 보여주는 입체적인 인물의 형상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긍정인물의 부정성이 함께 거론되고 부정인물로까지 호명되면서 성격과 감정의 변화 속에 인물의 입체성을 드러내는 작품이 북한 텍스트에서는 보기 드물다는 점에서 김정은 시대의 새로운 인물 형상화로 판단할 수 있다.

감정이 생생하게 살아 있는 인물들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북한 문학의 새로움을 선사한다. 지배인 홍유철이 최국락을 은퇴시키거나 자식에게 폭언을 퍼붓고, 운전수 최국락이 가부장적 모습을 보이거나 강제 명퇴를 당하고, 진순영의 드라마적 오해와 자식에 대한 과잉보호, 오순의 상급자 집안에 대한 분노와 감정의 직설적 표현, 기옥의 과감하고 솔직한 타인 평가 등이다.

타인에 대한 분노를 적절하게 형상화한 표현들이 곳곳에 등장하면서 실감나는 이야기로서의 공감대를 확보한다. 공산주의적 인간형으로서 신념의 화신이 아니라 감정을 날것으로 드러내는 인간적인 인간의 형상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 소설은 등장인물 내면 심리의 유연성과 유동성을 포착해 기존의 북한 소설이 지녔던 획일화된 캐릭터의 면모를 벗어나게 형상화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윤희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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