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종경북대 교수·노문학
김규종
경북대 교수·노문학

올해 대학 수학능력시험은 상당히 어려웠다고 한다. 특히 국어 31번 문제는 천문학, 역사학, 철학, 과학이 뒤얽힌 기나긴 지문(地文)을 이해한 극소수의 학생만이 풀 수 있었다고 전한다. 인문학과 사회과학, 자연과학과 예술 관련서적을 두루 통독(通讀)해온 사람으로서 문제의 어려움을 통감한다. 거기 덧붙여 한 가지 의문이 문득 고개를 든다. ‘무슨 까닭으로 이토록 난해한 문제를 냈을까?’ 누구를 위한, 무엇을 겨냥한 문제인가, 하는 물음!

1913년 3월 러시아의 스물네 살 여류시인 안나 아흐마토바는 ‘저녁에’라는 단출한 서정시를 창작한다. 바이올린 연주가 구슬프게 울려 퍼지고, 식탁의 얼음 접시에는 신선한 바다냄새를 풍기는 생굴이 담겨 있다. 노란 속눈썹 아래 웃고 있는 남자의 두 눈은 마주앉은 여인을 사랑스러운 새나 고양이 바라보듯 한다. ‘나는 믿을만한 친구요!’ 라고 말하면서 그는 여인의 옷을 건드린다. 여인은 사랑하는 남자와 처음으로 단둘이 있음을 하느님께 감사하며 기도한다.

여기서 독자들께 문제를 내보겠다. 굴 접시 옆에 필요한 것은 무엇이며, 남녀가 마주앉아 있는 장소는 어디인가? 이번 학기에 러시아 문학사를 가르치다가 학생들에게 아흐마토바의 ‘저녁에’를 소개했다. 칠판에 4연 16행의 시를 러시아어로 쓰고, 세 번 한국어로 번역해 주었다. 그리고 독자들께 제시한 똑같은 문제를 내보았다. 여러분은 분명히 어렵지 않게 정답을 떠올릴 것이다. 무척 쉬운 문제이므로! 그렇다. 백포도주와 레스토랑.

몇 년 전에 어떤 학생은 ‘초장’이라고 말했다가 꿀밤을 맞은 적 있었다. 박장대소하던 학생들과 어울려 나도 큰소리로 웃었던 기억이 새롭다. 하기야 초장없이 생굴을 먹는 것은 간단치 않은 일이다. 와사비장을 찍어 먹을 수도 있으련만! 문제는 학생의 내면에 자리한 ‘문화’ 혹은 ‘관습’이 내게는 생경(生硬)했다. “그렇다면 초장말고도 젓가락과 앞 접시도 있어야겠구나!” 슬며시 부아가 나서 나는 그렇게 응대했다.

그럼에도 우리는 유쾌했으며, 그들의 대면장소가 레스토랑이라는 사실을 당연지사로 이해했다.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한 남녀가 저녁나절에 벗들을 젖혀두고 오붓하게 두 사람만의 첫 대면을 가진 것이다. 그런데 이번학기 학생들은 ‘초장’은커녕 만남의 장소조차 헤아리지 못하는 것이었다. 초장 얘기를 꺼냈지만 웃는 학생은 없었다.

“여러분은 생굴을 어디서 먹어요? 거리에서, 광장에서, 지하철에서? 저녁안개가 퍼져 나가는 여러분의 집에서 바이올린 소리 들으면서 굴을 먹나요?”

나의 내부에서 현악기의 줄이 툭, 하고 끊어진 것같은 적막감이 찾아들었다. 종강(終講)을 목전에 두고 있는 시점의 나로서는 맥이 탁, 풀리는 순간이었다. ‘그렇다면 여태까지 해왔던 숱한 문학논의는 무엇을 위한 것이었단 말인가?’ 저토록 단순한 글줄 하나 이해하지 못하는 학생들에게 형식주의니 상징주의니 자연파니 위스망스의 ‘거꾸로’가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래서다. ‘불수능’이니, 융합이니, 천문학과 철학, 역사와 과학이 모여 짜낸 기막힌 텍스트니 하는 것들이 무엇을 위한 것인가? 평이(平易)하고 간명한 서정시 하나 이해할 능력이 없는 학생들이 거점 국립대학에서 문학을 공부하는 판국에 무슨 융합이란 말인가? 그래서 다시 생각해보는 것이다. 수학능력시험이 어떤 의미가 있으며, 누구를 위한 시험이며, 왜 필요한 것인지, 재삼재사 숙고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란 생각 말이다.

시험을 위한 시험, 난해함을 위한 난해함이 아니라, 짧은 글이라도 온전하게 이해하도록 인도하는 그런 시험이 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