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안(碧眼)의 이방인(異邦人)이 신라 천년의 왕경(王京) 실체를 벗긴다"

문화재청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에서 신라 왕경 연구를 위해 호주에서 온 시드니 대학 피터 암스트롱(60) 교수.

한국국제교류재단 초청으로 연구유학으로 경주에 온 그는 신라천년의 옛 수도 서라벌의 왕경 실체를 파헤치기 위해 연일 자료와 씨름을 하고 있다.

국내 고고학자나 사학자가 아닌 외국인이 한국 고대사를 연구한다는 것이 이상하게 느낄 수 도 있지만 그는 이 연구를 위해 사전에 충분한 지식과 정보와 자료는 기본적으로 축척하는 무장을 해 그 결과가 상당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는 일본 나라 왕경을 연구한 것이 신라 왕경에 발딛게 된 계기인데 이에 앞서 그는 지난 69년부터 73년까지, 또 79년부터 84년까지 일본에 거주하면서 나라 왕경을 연구하는 등 충분한 실력을 갖추었다.

그는 일본어 회화는 물론 한자를 자유자재로 표기하고 고대 신라와 중국, 일본 역사를 한 눈에 꿰뚫어 보고 있고 한자로 표기된 자료를 내놓고 설명할 정도여서 그의 능력은 입증된 셈이다.

더욱이 그는 중국문화의 한반도와 일본 유입 경로를 설명하기위해 중국 산둥반도를 중심으로 한반도를 포함, 일본열도까지 자연스럽게 연필로 백지위에다 그리면서 취재기자의 이해를 도모시켜 지켜본 학예사가 깜짝 놀라기도 했다.

신라 왕경을 연구하게 된 동기를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동양 도시역사에서 신라 왕경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 예로 경주도시계획이나 신라 통일 왕경은 일본에서도 연구한 바 있고, 북한의 경우 개성, 남한 벽제 풍납토성은 발굴돼 있고, 신라는 경주문화재연구소가 발굴을 하고 있는데 이에 동참하고 연구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한.중.일 왕경에 대한 비교 연구하기 위해서다"

특히 그는 "60년대 까지만 해도 일본은 중국문화가 한반도를 경유해 도입된 것이 아니라, 서해안 해로로 유입됐다"고 밝혀 충격을 주었고 이도 최근에 우리나라를 경유한 것으로 정정했다는 것.

신라 왕경의 특징으로 그는 "1천년 동안 수도가 있었기에 자체 연구와 개발이 있었고, 도시계획과 건축기술이 획기적으로 변화한 것은 일본과 중국에서 볼 수 없는 중요성을 띠고 있다"고 지적했다.

동양건축학을 전공한 그는 지난 1988년 전기난파궁(前期難波宮)을 연구했으며 '도꾸가와 막번(德川幕藩) 도시계획(都市計劃)'이란 제목으로 박사학위 논문을 내기도 했다.

그는 나라 평성궁은 경주로부터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것 같고, 경주는 성장하면서 도시가 팽창하여 거대한 국제도시로 발전됐다고 양국 역사도시를 비교할 정도로 해박한 지식을 소유한 그는 신라문화는 일본 문화와는 비교할 수 없는 독특함이 있고, 안압지는 세계적인 유산일 수 도 있는데 이를 세계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아 유감이라고 평가했다.

경주에서 남산이 가장 인상 깊은 곳이라는데 그는 그 이유로 등산도 좋아하지만 남산 유적을 감상할 수 있어 더욱 좋다는 이방인 노학자.

연구결과 보고서를 내기위해 오늘도 진땀을 흘리면서 그는 "일본의 역사와 문화는 서방에서도 상당히 알려져 있는데 반해 한국 역사는 서양인들에게 인식도가 아주 미약해 홍보가 필요하다"고 따금한 충고도 잊지 않았다.

경주/윤종현기자 yjh0931@kbmaeil.com

황성호기자 shhwang@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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