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오랑 · 세오녀는 日 개국신화의 모태
연오랑 · 세오녀는 日 개국신화의 모태
  • 등록일 2007.11.08 16:42
  • 게재일 2007.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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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역사적 배경



1. 근기국 형성과 신라로의 편입



1) 근기국의 형성

근기국의 읍기는 고현리(古縣里)로서 현재의 행정구역상으로 포항시 남구 오천읍 원리(院里:院洞)지역이다. 고현은 오늘날 포항 남부지역의 젓줄인 형산강과 냉천 사이의 중심지역으로, 양쪽 하구 부근에 어미들, 제내들, 송내들 등 넓은 충적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북쪽으로는 포항시 남구 인덕동, 동북쪽으로는 일월동과 청림동을 접하여 영일만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연해지역과 내륙을 있는 교통의 중심지로서 선사시대부터 주거생활의 중심지로 발전되어 간 것이다.

이병도 박사는 일찍이 근기국을 신라시대의 근오지현(斤烏支縣) 지역이었던 경북의 영일지역으로 비정하였다. 그리고 음운상으로도 근기(勤耆)-근오기-근오지(斤烏支)로 변함이 무리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근기국은 고현을 중심으로 오늘날의 포항시 남구의 오천읍, 연일읍, 동해면, 대송면 등의 지역을 지배한 소국을 형성하면서부터 이 고장의 역사는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2) 신라로의 편입과 연오랑세오녀 신화의 탄생

근기국은 기원전 2세기 말~기원전 1세기초 경 소국을 형성하였다가 신라 건국 이후 2세기경 고대국가에 편입되었다. 신라 고대국가의 형성기인 제5대 파사왕(80~112)때에 전쟁을 수행하여 안강·흥해·기계를 복속하여 울산까지 동해안 지역으로 영역을 확대하였다. 이 후 신라 고대국가 형성의 큰 정치사적 사건인 근기국 복속이 제8대 아달라왕(154~183)대에 이루어진다.

연오랑세오녀 신화 탄생의 역사적 배경은 아달라왕대 고대국가의 영역 확장에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무엇보다 신화가 탄생된 왕 즉위 4년(157)이 주목되며, 「2월에 감물·마산의 두 현을 처음으로 두었고, 3월에 왕은 장령진으로 순행하여 군사를 위로하고 모든 정병들에게 군복을 하사하였다」고 했다. 그리고 3월에 지난 해(왕 3년)의 계림령에 이어 죽령(竹嶺)까지 세력을 확장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계획과 실천은 아달라왕대에 이르러 영일만 일대를 실질적인 지배영역으로 복속하여 흥해에서 울산만에 이르는 동해안의 지역을 확보하게 된 것이다.

다음으로 신라 2대 남해왕 3년에 시조묘를 세운 후 7대까지 한 차례씩 시조묘에 제사를 지냈으나 8대 아달라왕대에 와서 두 번이나 시조묘 제사를 올리며, 시조묘를 중수했다는 사실은 건국의 시조신을 중심으로 정치세력을 통합하여 신라 고대국가의 확립을 도모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연오랑과 세오녀를 중심으로 한 근기국의 삼족오일월숭배 집단(사제자·귀족·직조·제철기술자 등)은 전통적인 천제를 유지할 수 없게 되고, 사로국 세력으로부터 압박을 받게 되자 신라의 복속에 불응하고 도기야 앞바다에서 배를 타고 양곡의 땅 신천지 일본지역으로 건너간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영일만의 근기국세력이 일본 변읍의 왕이 되었다는 것은 신라의 정치적 상황과 연계된 것으로 이 후 전개되는 모국 신라와의 교류관계를 짐작하게 한다.



2. 선진문화 전파와 일본과의 교류

잘 아는 바와 같이 고대 한국인의 일본이주와 문화이식이 일본고대사의 성격을 규정하고 있음은 학계의 일반적인 인식이다.

한국과 일본은 지리적으로 인접한 관계로 선사시대부터 관계를 맺어 고대에 이르러서는 한국의 문화가 대량으로 일본에 유입 전수되었다. 고고학적으로 보면 일본의 야요이시대(彌生時代:B.C 4세기~A.D 3세기)문화는 토기·청동기와 묘제·주거양식 등 한반도 문화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진한과 신라는 철과 철기를 생산하여 당시 동북 아시아에 널리 공급하던 철국이었으며, 그 흔적으로 영일 호동(虎洞:현 포항시 남구) 폐고분군(廢古墳群)에서 B.C.2세기~A.D.2세기경의 초기 철기시대의 철부(鐵斧)·철모(鐵?)·철도자(鐵刀子)·철촉(鐵鏃) 등의 철제품이 발견된 것으로 보아 근기국의 치소 인근에서 활발했던 철생산을 짐작할 수 있으나, 그 실체는 고고학적 성과를 더 기다려 확인되어야 할 것 같다.

일찍이 이홍직(李弘稙)은「신라 지방과 이즈모지방과의 긴밀한 척식(拓殖)관계를 전하는 일본측 고전으로서는 ‘이즈모풍토기(出雲風土記)’가 있다.」,「진한(辰韓) 지방에서 동해를 건너서 일본의 일부 지방의 지배자가 된 신화는 우리나라 고전에도 남아 있다... 이것이야 말로 태고시대에 정말 있을 수 있는 역사를 반영한 전설로 볼 곳이며, ‘연오랑(延烏郞)’이야 말로 일본 전설의 ‘스사노오노미코도(素잔嗚尊)’ 같은 존재가 될 수 있는 것이다.」라 하여 양국의 교통과 문화교류 등 이 방면 연구에 큰 시사를 주었다.

연오랑세오녀 세력들이 배를 타고 떠난 곳은 영일만 출입의 요해처인 임곡진으로 비정되며, 그들이 도해하여 개척한 곳은 영일만 지역과 가장 가까운 일본 지역으로 거의 같은 위도인 36。에 있는 오키(隱岐)섬과 이즈모(出雲)·마쓰에(松江)지역을 들 수 있다. 영일과 출운 지역은 가까운 거리, 항만, 조류와 풍향 등의 자연의 지리와 환경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이다.

일본의 천일창(天日槍) 설화는 연오랑세오녀 신화가 동점하여 이루어진 태양신화의 이동으로 보는 연구와 함께「도기야(都祈野)는 근오지(斤烏支)의 ‘오지’(烏支)와도 음이 일치하며, 일본의 지명 오키(隱岐)와도 동일한 것으로 미루어 연오랑세오녀가 건너가 옛땅 오기(迎日)의 이름을 신왕국의 명칭으로 삼았다」고 보는 연구는 태양신화 동점의 민속학적 접근과 지명의 언어학적 접근으로 눈길을 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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