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주형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

시(詩)가 그리워지는 요즘이다. 12월은 하루하루가 시이다. 아니 1분 1초가 시가 아닌 게 없다.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시가 처음과 끝처럼 절대몰입 상황에서 더 잘 쓰여 지는 것이라고 할 때, 지금은 누구나 시인이 될 수 있는 때이다. 그냥 지금 감정이 시침이나 분침, 아니면 어떤 상황에 툭 걸리기만 해도 바로 시가 되어 쏟아지는 때가 끝을 향해 가는 12월이다.

누군가가 필자에게 지금 사람들의 감정을 비유하라고 하면 필자는 발효를 마친 술항아리나, 아니면 흙탕물을 받아 둔 용기(容器)라고 말하고 싶다. 발효를 마친 술이나 차분하게 가라앉은 흙탕물이 담긴 용기는 극명하게 이분법으로 나누어진다. 가라앉은 것과 떠 있는 것으로. 최상위 부분에 맑게 떠 있는 그 기운들, 그 기운이야말로 지금 사람들의 감정이 아닐까 싶다. 모든 불순물, 모든 혼탁한 감정을 다 가라앉히고 순수 그 자체의 모습으로 드러낸 맑음!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순결함의 극치! 바람도 차마 흔들지 못하는 절대 경지!

필자는 그 감정을 용서와 감사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많은 12월 시에는 이들 말들이 시어가 되어 거룩한 12월의 집을 짓고 있다. 사람들은 그 집에서 지난 1년 동안의 모든 감정을 내려놓는다. 그리고 그 자리에 희망이라는 단어를 채우고, 차분히 새해를 기다린다. 그들의 모습은 항아리 맨 위에서 세상 모든 것의 배경이 되어주는 맑은 기운 그 자체다. 시가 그리운 요즘 필자의 감정을 터트린 시가 있다. 어느 라디오 방송에서 오프닝으로 나온 시이다.

“용서를 생각하자 눈이 쏟아지기 시작했다/용서를 구하러 가는 길 환하라고 (중략) 가서 문만 잘 두드리면 된다고/두드리기 망설여지면 대신 창문 두드려 주겠다고/함박눈이 두드리면 누구든 나오지 않고는 못 배기겠지/나오면 (중략) 잘 왔다고 실은 기다리고 있었노라고/따스한 눈물 함께 흘리겠지/용서를 생각하자 함박눈이 포옹의 축제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이 시를 듣는 순간 필자의 마음엔 폭풍이 일었다. 며칠 전에 내린 함박눈의 의미를 필자는 왜 몰랐을까? 왜 필자는 용서를 구하러 가지 못했을까? 혹여나 밤사이 문을 두드렸을 누군가의 마음을 왜 기다리지 못했을까? 함박눈이 내린 날 필자는 2019년 마지막 고입 전형을 위한 원서에 결재를 하고 있었다. 산자연중학교는 전국단위 모집 학교이다. 그래서 고입 원서도 학생들 주소지에 따라 달리 써야 한다. 올해는 서울, 인천 등 8개의 시도 교육청에 고입 원서를 접수했다. 매년 고입 원서를 작성하면서 필자는 어느 한 해 큰소리를 안 낸 적이 없다.

아무리 고입 전형이 시도 교육감의 고유 권한이라고 하지만, 고입제도 하나 통일하지 못하는 이 나라에서 무슨 큰 교육을 하겠다는 건지? 말로는 혁신, 창조 등을 외치면서 정작 당사자들은 구태(舊態)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정말 이 나라 교육에 희망이 있기나 한 건지? 필자가 상대한 몇 몇 지역 고입 담당자들이 보여준 보신주의와 융통성 없는 사고는 이 나라 교육의 현 주소를 적나라하게 말해주었다. 경직될 대로 경직된 이 나라 교육에서 창의(創意)와 창조(創造)를 찾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필자는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데 정말 웃기는 것은 이들 담당자들이 속한 교육청 부서명이다. 유연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이들이 속한 부서는 바로 ‘혁신과’였다.

TV에서 경북 도의회 본회의 장면을 보았다. 질의대상은 경북교육청! 도의원의 사이다같은 질문을 듣는 순간 필자 마음엔 잠시 교육에 대한 희망 불씨가 되살아났다. “아우성을 치면 헌법도 바꿀 수 있습니다. 교육부에 대고 아우성을 칠 수 있습니까?” 돌아온 답은? 아무리 큰 함박눈이 내려도 이 나라 교육은 절대 용서받을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