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원 규

저기 물굽이 구랑비리 돌아돌아

저문 강을 따라가면

물살 찰랑이는 자라바위 위에

한 사십년 웅크려앉은 사람

아버지, 이제 그만 일어나시지요

(중략)

약속은 없었어도

흐드러지게 피어난 무슨 무슨 꽃들

몸팔러 간 누이야

칼꽃 물고 미쳐서라도 오겠고

척추 부러진 형이야

앉은뱅이꽃으로 기어서라도 오겠지만

아버지, 우리가 먼저 달려가

살 섞어야만

마침내 눈부신 꽃사태 아닌지요

저기 저

역사의 물굽이마다

물살 찰랑이는 자라바위로

한 사십년 웅크리고 앉은 사람들

아버지, 이제 그만 일어나 가시지요

이 땅 어느 산굽이 강기슭에 비바람 눈 맞으며 꼿꼿이 선 나무와 바위가 없겠는가. 지리산, 섬진강은 유독 한 많은 역사의 아픔을 품고 밝은 솔바람과 맑은 물줄기를 간직하고 유유히 흐르고 있는 것이다. 지리산 자락에서 시를 쓰며 살고 있는 시인은 가슴 아픈 사연을 품고 피어나는 꽃들을 보며 눈부신 꽃사태라는 반어와 역설의 미학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아주 감동적인 시가 아닐 수 없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