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창훈경북도청본사 취재본부장
▲ 이창훈경북도청본사 취재본부장

중국 춘추전국시대 얘기다.

후일 시황제(始皇帝)가 된 진나라 왕 영정은 기원전 260년 조나라와 전국시대 최대의 전쟁인 장평의 전투를 벌여 조나라 병사 40만명을 죽이거나 생매장하는 등 주변 국가에 공포의 대상이 됐다. 이후 2년 뒤 진나라는 다시 조나라에 쳐들어가 서울 한단을 포위했다. 조나라는 필사적으로 방어해 양군의 공방은 9개월이나 계속되면서 조나라는 멸망직전에 이르렀다. 이렇게 상황이 급박해지자 조나라는 멸망을 면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초나라와 힘을 합해 공동대응하는 방법을 강구했으나 당시 여러 나라들이 진나라를 무서워해 동맹맺기를 주저하는 실정이었다. 이에 조나라 재상인 평원군은 죽음을 각오하고 동맹을 구걸하기 위해 초나라로 가게됐다.

평원군 조승은 일행으로 식객 3천명 중 지용을 겸비한 자 20명을 데려가기로 했으나 마지막 한 명을 선발하지 못해 애를 태우고 있었다. 이때 식객 중 모수라는 사람이 스스로 천거했다. 모수자천(毛遂自薦)이란 고사는 여기서 생겨났다. 하지만 평원군은 식객이 된지 3년이 됐지만 ㅂ‘모수는 이름도 알려지지 않았고, 공도 세운게 없다’며 거부했다. 이에 모수는 “지금까지 주머니에 넣어질 기회가 없어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기회를 달라”며 매달려 다른 일행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협상단에 참여했다. 낭중지추(囊中之錐)라는 말도 이곳에서 나왔다.

이때쯤에는 초나라도 진나라 백기 장군에게 서울 언과 영을 빼앗기고 동쪽으로 천도해 있었다. 조나라의 동맹제의에 진나라의 노여움을 겁내 동맹성사가 결렬되는 분위기였다. 이때 모수가 회담장에 급히 들어갔다. 그는 초나라 임금 앞에서 “옛날 은나라 탕왕은 사방70리, 주나라의 문왕은 사방 백리의 땅을 가지고 왕노릇을 하고 천하의 제후들을 복종시켰다. 이는 병력을 의지한 것이 아니라 천하의 움직임을 살펴 알고 신망을 얻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초나라는 사방 5천리의 땅과 백만대군을 갖고도 진나라에 쩔쩔매고 있다”며 조나라와 동맹의 이점을 조목조목 설명했다.

목숨을 건 모수의 설득에 초나라 왕은 조나라와 동맹을 맺고 진나라에 대항, 조나라는 멸망을 면하게 된다.

귀국한 평원군은 이번 공을 자신의 공이 아닌 모수의 공으로 돌리고 모수를 최고 상객으로 대우한다. 이후 평원군은 “지금까지 수천명을 평가해 사람보는 눈은 틀림없다고 자신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 모수의 일로 해서 나의 어리석음을 깨달았다, 모수의 세치 혀는 백만대군보다도 강했다”며 “다시는 사람을 평가하지 않겠다”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옛날 중국역사 이야기가 길어졌지만, 인사가 어렵다는 점을 예로 들려했을 뿐이다.

바야흐로 인사시즌이 도래했다. 경북도의 경우 이철우 지사가 당선된 이후 실질적인 첫 인사인만큼 많은 공직자들과 언론 등이 관심을 갖고 있다. 공직자는 뭐니해도 그동안 자신이 열과 성을 바친 결과물을 인사에서 받아보기 때문이다. 그동안 경북도 인사는 사실상 ‘비인기’(비서실, 인사·기획부서 출신)인사였다. 일반 사업부서 등은 뒤처진 게 사실로 인사에서도 어느 정도의 양극화가 고착됐다.

이 지사는 취임 후 직원들의 사기진작을 위해 실국장 인사는 자신이 하고 나머지는 실·국장이 천거하는 인물로 채우겠다고 밝혔다. 이번 인사에서 과연 이러한 일들이 잘 지켜질지 지켜볼 일이다. 행정에서 가장 어려운 게 인사분야다. 한 사람의 우대자가 나오면 또다른 피해자가 생겨나는 등 오죽하면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는 말까지 나왔겠는가. 이철우 지사의 인사에 공무원들의 관심이 과도하다 할 정도다. 이번 인사는 ‘낭중지추’의 과감한 발탁과 사라져야 할 사람의 퇴출이 분명히 드러나야 한다.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