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수단 막힌 뇌출혈 환자
어선으로 이송 시도했지만
높은 파도로 끝내 되돌아와
회항 하루만에 목숨 잃어
“아프면 앉아서 죽어야 하나”
주민들, 대책마련 강력 촉구

속보 = 울릉도에서 발생한 응급환자가 육지 병원으로 이송이 막혀<본지 6일 자 4면 보도> 끝내 목숨을 잃었다. 겨울철 동해안 기상악화에다 대형여객선마저 선박정기검사를 이유로 쉬어 이동수단이 막힌 울릉도 응급환자들이 의료사각지대에 방치되고 있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로 꼽힌다.

지난 5일 울릉도 주민 A씨(67·여·북면)가 갑자기 쓰러져 울릉군 보건의료원을 찾았지만, 뇌출혈로 판정받고, 육지 종합병원 이송이 불가피해졌다. 그러나 국가(울릉군보건의료원)가 지원할 수 있는 모든 이송수단이 막혀 육지 병원을 찾지 못해 치료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울릉도에 응급환자가 발생하면 의사의 판단에 따라 중앙119 헬기와 경북 소방헬기, 동해해경청헬기, 동해해경경비함, 여객선 등을 이용해 후송하는게 관례다.

A씨가 울릉군보건의료원을 찾은 5일은 동해의 기상악화로 여객선 운항이 중단됐고, 헬기 이착륙마저 불가능한 상태였다. 차선책으로 기상악화에도 운항할 수 있는 해경경비함을 요청했으나 이날 북한수역에서 조업 중이던 중국 어선들이 우리나라 EEZ(배타적경제수역)로 남하해 조업하고 있다는 신고를 받고 모두 출동해 이마저 여의치 않았다.

울릉군보건의료원은 실낱같은 희망으로 해군에 경비함 파견을 요청했지만, 작전 중이어서 응할 수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 동원할 수 있는 긴급 이송수단이 모두 막혀버렸다.

하지만, A씨의 남편은 최후의 수단으로 풍랑주의보에도 운항할 수 있는 29t급 어선에 희망을 걸었다. 가족들은 어선에 환자와 보건소 의사 2명을 태우고 이날 오후 4시 울릉도 저동항을 출발했다. 목숨은 건질 수 있다는 한 가닥 희망으로 어선을 덮치는 집채만한 파도를 뚫고 목숨을 건 환자 이송작전을 펼쳤지만, 동해의 기상은 끝내 항해를 허락하지 않았다. 환자를 실은 이 배는 운항 4시간만에 울릉도로 되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어선에 같이 탔던 젊은 공중보건의가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의 악천후 속에 사경을 헤매는 환자의 수동산소호흡기를 끝까지 붙들고 안간힘을 쏟았지만 끝내 허사가 되고 말았다. 울릉도로 돌아온 환자의 증세가 더욱 악화됐다. 이들의 노력에도 보람없이 환자는 남편과 자녀의 간절히 원했던 육지 종합병원에서 수술 꿈을 이루지 못하고 이튿날 숨졌다.

울릉도 주민 김모씨(54)는 “도대체 선진국 반열에 들어섰다는 대한민국에서 이 같이 후진국형 현상이 발생한다는 게 말이 되는냐”며 “기상악화로 육지로 고립되는 울릉도 주민들을 위한 전천후 이동수단을 강구해 줄 것을 수차례 요구했지만 무시당했고 이번 사고는 정부의 무관심이 빚은 결과”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또다른 주민 이모씨(63·울릉읍)는 “울릉도 사는 게 억울하다. 생명보다 귀중한 것은 없다. 병원 인프라가 부족한 울릉도는 육지 후송이 생사와 직결된다”며 “어떤 이유로도 환자이송에 도움을 주지 못한 정부의 책임이 크다. 반드시 대책을 강구해야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울릉도와 육지를 연결하는 뱃길이 동해 해상에 내려진 풍랑주의보로 5일째 끊어진 상태이다. 지난 4일 오전 9시 포항과 울릉간을 운항하는 우리누리1호(534t급·정원 449명)가 울릉 저동항을 출항한 것을 마지막으로 9일 현재까지 울릉도 여객선 운항이 모두 중단돼 있다. 울릉/김두한기자

kimdh@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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