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재휘논설위원
▲ 안재휘 논설위원

부족한 음식을 놓고 힘센 맞이와 둘째만 배불리 먹고 나머지 동생들을 늘 주리게 만든다면 이는 온당한 처사인가. 자유민주주의가 신봉해온 다수결 원칙은 옳다. 이견이 존재할 때 합리적 결론을 도출하는 방법으로 이보다 더 공정한 방법은 없다는 차원에서 그렇다. 단순다수의 선택에 따르는 단순다수결(simple majority)이야말로 비용을 줄이고 속도를 높이는 지혜로운 의사 결정법이다. 그러나 이 단순다수결은 단지 승자라는 이유로 소수가 지나치게 많은 권한을 독점하는 모순을 파생한다. 문제점을 보완하는 방법으로 과반수로 결정하는 절대다수결(absolute majority), 3분의2나 4분의3 등 특정 다수의 결정에 따르는 제한다수결(qualified majority)을 적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절대다수결은 결선투표를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고, 제한다수결은 결론이 안 날 개연성을 배제할 수가 없다.

국회가 2019년도 국가예산안을 야3당의 불참 속에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 등의 힘만으로 처리했다. 통과된 내년도 예산 규모는 올해보다 40조원 늘어난 469조6천억원이다. 그런데 예산안 통과 이후에 불어닥친 후폭풍이 예사롭지 않다.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정의당 등 야 3당은 예산안 처리를 ‘더불어한국당(?)의 국민 기만’이라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예산안 처리와 선거제도 개혁을 함께 처리하자고 주장하던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와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지난 6일부터 단식을 이어가고 있다. 손 대표가 단식에 돌입하면서 내놓은 입장발표는 자못 비장하다. 그는 “내가 무슨 욕심을 갖겠는가. 이제 나를 바칠 때가 됐다”고 선언했다. 군소 3당이 주장하는 선거제도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다.

국회입법조사처가 발표한 “비례대표의 비율이 낮고, 득표율과 의석율의 불비례성이 높다”는 분석보고서를 굳이 들지 않더라도, 우리 선거제도의 모순은 이제 인내할 수준을 넘어섰음이 자명하다. 우리는 전체의석(300석) 대비 비례대표(47석)가 15.7%에 불과한 반면, 독일의 경우 총의석 598+알파(α) 중 지역구 299석, 비례의석 299+α로 지역구와 비례대표 비율이 1대 1수준이다. 뉴질랜드는 총 의석 120+α, 지역구 65석, 비례 55+α로 지역구와 비례대표가 1.2대 1이다. 스코틀랜드는 130석 중 지역구 73석, 비례 56석으로 1.3대 1의 비율을 보인다.

우리 국회의 비례대표 비율 상향은 시대적 흐름에 정확하게 부응한다. 단순다수제와 양당제, 소선거구제가 품고 있는 승자독식(勝者獨食) 구조의 독소를 놔두고는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게 돼 있기 때문이다. 야3당이 주장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설득력을 얻고 있는 배경은 어디까지나 다당제의 착근을 원하는 민심이다. 실제 여론조사에서도 다당제에 대한 선호도는 절반을 넘나든다. 이제 정치를 두 줄로 세워서 꾸려가기에는 현대인들의 삶이 참으로 다양하다. 다양성 추구는 미래로 나아가는 불가피한 선택인 것이다.

우리 정치는 다수결 의사결정 구조가 빚어낸 콩도르세의 역설(Condorcet paradox)에 깊이 걸려들었다. 그럼에도 민주당·한국당 거대양당은 당리당략적 계산에만 갇혀 있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집권 여당이 가장 손해를 보게 된다’고 소아병적인 견제심리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도 했다.

이제 먹이를 나누는 일을 고양이들에게 맡기는 것은 옳지 않다. 선진국처럼, 중립을 철저하게 담보할 수 있는 민간위원회가 중심에 서서 확 바꿔내야 한다. 표심의 왜곡·사표(死票)·승자독식의 관행을 끊어내기 위한 첫걸음으로서 선거제도 개편은 시급한 과제다. 고양이 밥그릇에 놓인 저 생선을 빼앗아 다시 나눠야 할 때다. 나라의 주인인 국민의 추상같은 결단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