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베가스를 떠나며’ 피기스 감독… 한국서 차기작 준비

▲ 영화감독 마이크 피기스가 지난 3일 서울 광화문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영화 ‘라스베가스를 떠나며’(1996)로 유명한 영국 출신 마이크 피기스 감독(69)이 한국에서 우리말로 된 영화를 찍는다.

최근 시나리오를 한국어로 번역하는 작업을 마쳤고, 현재 국내에 머물며 제작사들을 만나고 있다.

그의 프로젝트가 최종 성사된다면 서구 유명 감독이 한국에서 한국어로 된 영화를 찍는 첫 사례가 된다.

지난 3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피기스 감독은 “한국영화와 드라마 팬으로서 자연스럽게 한국에서 영화를 찍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피기스 감독은 영국에서 DVD로 한국 유명 감독들의 영화를 봤고, 넷플릭스를 통해 여러 편 한국 드라마를 접했다고 한다.

손예진이 주연한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김희애가 열연한 ‘밀회’ 등을 인상적인 드라마로 꼽았다. 그가 꺼낸 공책에는 손예진, 김희애, 공효진, 김옥빈, 이솜, 조정석, 유아인, 정우성 등 한국 유명 배우 이름이 영어로 빼곡하게 적혀있었다.

그는 “한국영화는 남성적이고, TV 드라마는 여성적인 면이 강한 것 같다”면서 “영화와 드라마를 동시에 보다 보니까 비교가 가능해졌고, 더 알고 싶은 마음도 생겼다”고 했다.

“한국 드라마의 경우 시나리오가 탄탄하고, 여성 캐릭터가 잘 구현된 것 같아요. 역할이 다양하고 깊이도 있죠. 특히 가족 문제나 성희롱 등 사회적 이슈를 다루는방식이 흥미로웠습니다. 한국영화는 심리적으로 복잡한 상황들을 잘 풀어내고, 특히한국 배우들의 연기가 너무 뛰어납니다. 감독 입장에서는 한국에 와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죠.”피기스 감독은 “한국 영화인들은 일본이나 중국과 비교할 때 국제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고, 에너지도 넘친다”면서 “한국에서 영화를 찍을 경우 재미있는 결과가 나올 것 같다”며 웃었다.

그는 “서울의 야경은 마치 미래 사회 모습 같다. 서울의 건축가들은 영화 ‘블레이드 러너’에 많은 영향을 받은 것 같다”며 “영화 촬영지는 서울 혹은 부산이 될 것같다”고 말했다.

그가 준비 중인 한국어 신작은 여성이 주인공인 스릴러물이다. 과거 사이코패스에게 납치됐다가 죽을 고비를 넘기고 탈출한 여성이 기억을 잃어버렸다가 10년 뒤 옛 기억과 다시 마주하면서 벌어지는 내용이다. 가공할만한 힘을 지닌 여성 캐릭터가 등장한다. 꿈과 현실이 혼재돼있고 과거와 현재, 미래가 섞여 있는 독특한 구성의 작품이다.

피기스 감독은 “100% 한국 배우들을 캐스팅할 것”이라며 “이른 시일 내 좋은 배우들을 찾아 가급적 내년에 촬영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미국 출신 영화평론가로 한국에서 20년 가까이 활동한 달시 파켓(들꽃영화상 집행위원장)이 프로듀서로 참여한다.

이날 자리에 함께한 달시 파켓은 “독특한 소재의 영화로, 한국 제작사들이 많은 관심을 보인다”고 전했다.

영국에서 태어나 케냐 나이로비에서 자란 피기스 감독은 런던에서 음악 공부를 했으며 그룹 ‘가스 보드’ 멤버로 활동했다.

영화 ‘폭풍의 월요일’(1988)로 감독 데뷔를 했으며, 할리우드에 진출해 ‘유혹은 밤그림자처럼’(1990)을 연출했다. 그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안겨준 작품은 라스베이거스를 무대로 삶을 포기한 알코올 중독자 벤과 거리의 여자 세라의 사랑을 그린 ‘라스베가스를 떠나며’(1996)다. 벤을 연기한 니컬러스 케이지는 이 영화로 아카데미남우주연상, 골든 글로브 남우주연상 등을 받으며 세계적인 스타가 됐다.

피기스 감독 역시 뉴욕비평가협회 작품상 등을 받으며 거장 대열에 올라섰다.

이후 웨슬리 스나입스와 나스타샤 킨스키가 주연한 ‘원 나잇 스탠드’(1997), ‘섹슈얼 이노센스’(1999), ‘콜드 크릭’(2003) 등을 선보였다.

그는 영화뿐만 아니라 오페라와 3D 영화를 접목한 작품을 선보이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새로운 도전을 했다.

피기스 감독은 “같은 환경에서 편안하게 작업하면 계속 똑같은 작품만 나온다”며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곳에 가서 새로운 것을 보고 영향을 받아야 열정이나 에너지가 생긴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의 젊은 관객에게 그의 신작이 어떻게 비칠지를 묻자 “바깥에서 본 다른 시선으로 한국사회를 찍는다면 기존 한국영화와는 차별화하고, 흥미로움을 줄 수있다”며 “한국 젊은 세대들도 새로운 영화에 대해 목마름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