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희룡서예가
▲ 강희룡 서예가

영조(1694~1776)는 스스로를 반성하는 한편 세자를 가르칠 목적으로 유교 경전과 역사서에서 수신과 위정에 관련된 내용을 주제로 자신의 견해를 기록한 책으로 ‘어제자성편(御製自省編)’을 편찬했다.

이 책 외편(外篇)의 첫머리에 수록된 시가 한 수 있다.

‘교화와 정치는 오직 사람에 달려 있나니/ 백성들의 고락이 바로 나의 고락이로다./ 나라 다스림에 좋은 방법을 알고자 하는가./ 기미를 잘 살펴 어진 신하를 등용해야 하네.’

이 책에서 영조는 수신의 요체를 마음을 다스리는 것으로 보았고, 위정의 요체를 기미(幾微)를 살피는 것으로 보았다.

기미를 살핀다는 것은 선악이 나뉘는 조짐을 살핀다는 것으로 곧은 인재를 변별하고 등용하여 국가를 다스리는 바탕으로 삼는다는 의미이다.

영조는 젊은 시절부터 노론과 소론의 격렬한 당쟁을 목도하였고, 왕세제(王世弟)가 되어서는 충역(忠逆)과 시비로 발생한 신임사화(辛壬士禍)의 참상을 몸소 겪었다.

이를 통해 어느 당파도 믿을 수 없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기에 임금으로 즉위하자 탕평책(蕩平策)을 시행하였다.

당파의 이익이나 사적으로 좋아하고 미워함이 아닌 개인의 능력과 선악에 따라 인재를 등용함으로써 왕권을 강화하고 국가의 발전을 도모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임금이 인재등용의 방법은 어떠해야 하며, 등용되는 인재가 지녀야 할 자세는 어떠해야 하는가하는 물음에서 조선 중기의 대학자 율곡 선생은 1569년(선조1) 부교리(副校理)를 사직하는 상소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임금이 신하를 등용할 때는 반드시 그 사람에 대해 널리 자문해 보고 자세히 살펴보아야 하고, 신하가 임금을 섬기게 될 때에는 반드시 상황을 깊이 고려하고 자신의 역량을 분명히 파악해야 합니다. (중략) 임금은 어진 인재를 찾는 것을 급선무로 삼아 작위와 봉록을 함부로 내주어서는 안 되며, 신하는 스스로의 지조를 지키는 것을 뜻으로 삼아 이익과 명예를 위해 과분한 자리를 받아서도 안 됩니다.’

단 한 번의 수령 경험이 전부인 조선후기의 실학자인 다산 정약용(1762∼1836) 선생이 18년간 유배생활에서 조선시대 지방자치단체장 ‘수령’의 덕목에 대한 12부 72조의 자세한 지침을 목민심서로 집필한 것도 그 궤를 같이 한다.

우리 문화의 주요한 기반이었던 유학의 관점에서 인성은 인간의 내면에 갖추어진 확고 불변한 본성이다.

주자는 ‘소학제사(小學題辭)’에서 소학의 정신을 요약하여 ‘원형이정은 천도의 일정함이요, 인의예지는 인성의 강령이다.’라고 정리했다. 원형이정이라는 자연계의 운행에 일정한 질서가 있듯이, 자연의 일부로서 사람의 본성에도 인의예지라는 도덕성이 있음을 명시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청와대 특별감찰반 직원들의 비리사실이 적발되어 논란이 되고 있다.

대통령이 임명하는 행정부 소속 고위공직자나 공공기관 단체장과 대통령의 친족 및 특수한 관계에 있는 자에 대해 감찰업무를 주로 수행하는 이들의 비리는 결국 쥐를 잡으라고 키우는 고양이가 쥐는 안 잡고 스스로 쥐의 행태를 저질렀으니 인재등용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우쳐주는 한 사례라 하겠다.

오늘날처럼 공직자의 자질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는 현실에서 사람을 쓸 때는 널리 자문하여 측근들이 이목을 가리는 것을 막고, 자세히 살펴야 다수의 논란에 현혹되지 않는다는 율곡의 상소와 인재 등용의 중요성과 방법을 제시한 영조의 지혜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