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향 규

눈보라 멈춘 산 묻혀진 길 헤치며

걷는다 마른 솔잎처럼 흩어져

쌓인 눈 위에 고꾸라진다

돌아보지 말일이다 삶의 궤적처럼

아스라이 멀어져 가는 흔적들

맨 뒤 점이 된 발자국 하나

동엽령에서 이쪽을 향해 손

흔들고 있다

이제 곧 향적봉인데,

길은 어디에도 없다

새로 만든 점 하나에서 나는

걸음을 멈춘다

서러운 것이, 살아온 삶만큼이나

무겁게

산등성이를 누르고 있다

거칠게 헤쳐온 지난 생애처럼

살아온 내 역사들이 골짜기마다

타고 오른다

야유와 환호의 저 메아리들,

알 수 없는 무게로

덕유평전에 갈앉는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지났을까

수런대는 이야기들이

전설처럼 일어선다

길 따라 걸어서 산마랑에 이르면

눈길 헤치며 나는 다시

걷는다

눈 덮인 덕유평전을 건너며 시인은 한 평생 자신이 남기고 온 삶의 자국들과 그 부침(浮沈)의 시간들을 돌아보고 있음을 본다. 길도 보이지 않는 아득한 눈밭을 헤매며 도무지 길이 보이지 않는 인생의 길을 떠올리고 있다. 자신이 어디에서 어디까지 가는지를, 가야하는지를 묻지 않고 걷고 또 걷는다고 토로하고 있다. 그게 인생이 아닐까.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