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의 복지분야 확대 정책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으나 지방단위의 기초자치단체 살림살이는 이로 인해 오히려 더 궁핍해지고 있다. 복지분야 예산이 증액되면서 지자체가 부담해야 할 국가보조 사업비(매칭 예산) 부담이 그만큼 늘어나기 때문이다.

국가사업에 공동 분담해야 하는 이른바 매칭 예산이 지자체의 재정에 부담을 주고 있다는 사실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그러나 그 규모가 갈수록 커져 지역의 숙원사업들이 줄줄이 뒤로 밀려날 판이라는데 문제가 있다.

경북도내 기초자치단체의 내년도 예산안은 대체로 전년보다 많이 증가했다. 23개 시군 가운데 예산 1조 원을 넘긴 자치단체만도 포항, 구미, 경주, 안동, 김천 등 5군데에 이른다. 이처럼 예산의 규모가 늘어났지만 실제로 지역에서 꼭 추진돼야 할 사업들이 정부의 복지비 지출에 밀려 곳곳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상주시만 보더라도 2008년부터 202억 원의 예산을 들여 짓기로 한 문화예술회관 신축사업이 내년에도 제대로 될지 알 수가 없다. 30년 가까이 된 현 문화회관은 낡고 비좁아 군민들의 눈높이를 도저히 맞출 수 없는데도 예산 확보가 어려워 10년째 지자체는 전전긍긍하고 있다. 경주의 유림대교 건설이나 황성공원 사유지 매입 등 지역의 숙원사업들이 예산 부족으로 접어야 할 상황에 이른 곳은 하나 둘이 아니다. 전국의 모든 기초자치단체가 공동으로 겪는 현상이다. 그런데도 정부차원의 이렇다 할 개선책은 없다.

지자체의 숙원사업이란 대체로 단체장의 공약이거나 그 지역에서 반드시 추진돼야 할 화급을 다투는 사업들이다. 지역민의 삶의 질 개선과도 직접적 영향이 있는 사업이나 정부의 복지분야 사업에 밀려 축소내지 연기되고 있는 것이 지방의 현실이다.

문 대통령은 지방 재정의 독립성을 높이기 위해 현재 중앙정부와 지방의 재정 비율을 8대 2에서 7대 3으로 끌어 올리고, 장차는 6대 4 비율로 바꾸겠다고 했다. 그러나 지방재정 분권에 따른 정부측 대책은 현재로서는 오리무중에 가깝다.

지방의 기초자치단체 스스로가 재원을 마련하고 자체적으로 쓸 수 있는 돈은 거의 없다. 전국 지자체의 평균 재정자립도가 53% 수준이나 수도권 지역을 빼고 나면 나머지 지방의 재정자립도는 평균 30% 안팎에 불과하다. 자치단체가 재원을 조달해 지역의 숙원사업을 풀어간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인 것이다.

“중앙정부의 복지 예산은 중앙정부의 생색내기이지 지방에서는 덤터기일 뿐”이라는 말이 이런데서 나온다. 내년도 슈퍼급 예산안에서도 복지분야 사업이 역대 최고급으로 짜여 있다. 올해부터 아동수당이 지급되면서 벌써부터 지방에서는 내년도 사업을 걱정하는 분위기다.

지방의 운신 폭을 넓힐 매칭 예산의 비율을 줄여주는 것이 꼭 필요하다. 중앙 예산의 종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지방자치는 허울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