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신림9동은 지금은 이름이 변해서 대학동이다. 옛날에 이 부근이 산동네에 무허가주택 천지였을 때 귀에 박힌 이름이라 바꾼 것이다. 봉천동, 신림동 두 동네 이름이 너무 익숙해서 새로 붙은 이름이 서러울 지경이다.

이 신림9동은 서울대학교 관악 캠퍼스 학생들을 위한 자취촌, 하숙촌 역할도 단단히 해와서 유난히 다세대 주택에 원룸이 많다. 이 학교에 진학한 타 지방 출신 학생들은 신림, 봉천 두 동네 중 으레 한 곳은 거쳐가게 마련이다.

공부와 인연이 있는 동네라 그런지 오랫동안 이곳 일부는 고시촌이라 불리기도 했다. 사법, 행정 고시나 그밖의 직급 높은 공무원 시험을 위한 학원이 들어서고 고시 공부하는 사람들을 위한 고시원들이 수없이 들어섰다. 지역 경제를 돌리는 원동력이 바로 이 고시원생들이었고 또 서울대 학생들이었다.

법과 대학 대신에 로스쿨 제도가 생기면서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곳이 바로 이 고시촌이다. 당장 고시 보는 사람이 확 줄어드니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던 고시원에 빈방들이 생기고 이 사람들 드나들던 밥집, 세탁소, 커피숍, 술집들이 손님이 궁해졌다.

궁즉통이라 했던가. 이 동네 어려움을 메우고 나선 것이 이 사회의 가난한 사람들, 하루하루 일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고시원 방들이 얼마나 좁고 다닥다닥 붙었는지는 아는 사람은 안다. 이번에 종로의 고시원 화재로 드러난 고시원 내부 모습은 그중에서도 열악한 편이지만 시설 좋다고 해도 사실상 셀프 ‘감금’을 위한 사육시설 같은 인상을 주기 안성맞춤이다.

그러다 보니 월세가 쌀 수밖에 없다. 가끔 돈없는 대학원생들도 들어가 기숙하는 곳으로도 이용되었고, 나도 몇 달은 살아본 기억이 난다. 나이는 들어 부모님께 손 벌리기 어려운 학생들, 고시 공부에 이력이 난 직업 시험생에, 날품팔이로 생계를 이어가는 남자들, 이주민 노동자들이 이 고시원의 단골 손님인데, 이번에 화재 때 보니 의지할 데 없는 노인분들도 주요 고객층으로 자리를 잡았다.

나는 가끔 우리나라는 왜 이럴까 하고 절망감에 사로잡히곤 한다. 그런 감정이 강해지는 때는 특히 인재로 인해 대규모 인명 피해가 발생했을 때다. 보람있게 살다 가려고 태어난 세상이다. 그런 세상에 와서 온갖 시달림을 받는 것도 모자라 떠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가난과 악의와 무원칙과 안일한 행정의 희생양이 되어버린다면 그 사람의 억울함은 무엇으로 풀어줄 수 있나.

오랫동안 민주주의가 옳은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 말로는 이 세상의 타인들의 아픔을 함께 짊어지는 사람들을 충분히 길러낼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사랑주의. 종교적 차원의 숭고한 사랑이 초월적 세계에 갇혀 있지 않고 세상 속으로 들어올 때, 그리하여 사랑주의가 세상을 움직이는 근본 원리가 될 때야, 우리 세상은 구원을 얻을 것이다. 가난한 이, 병든 이는 나랏님도 못 구한다는 틀에 박힌 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 가난을 나라가 구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지지 않을 때’ 우리 세상은 나아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아직 우리는 갈 길이 멀다. /방민호<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한국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