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흥규 시인 루게릭병 투병 중 쓴 시 100편 담아
하흥규 시인 루게릭병 투병 중 쓴 시 100편 담아
  • 윤희정기자
  • 등록일 2018.11.22 20:24
  • 게재일 2018.11.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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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시듬’
하흥규 지음·기획출판 오름 펴냄
시집· 1만원

“산기슭 절개한 절벽 밑동/박토에 발묻고/아슬아슬 난간에 떨어질듯/생명줄 하나 붙잡고/몸뚱아리 배배 꼬며/얽히고설켜서/하늘보고 야금야금 오르며/나목이 부끄러운지/ 연둣빛 웃음 짓는다.”

‘무시듬’(기획출판 오름)이라는 시집에 실린 ‘등꽃’이라는 시의 한 구절이다. 시집을 출간한 사람은 온몸이 점점 굳어가는 루게릭병에 걸려 투병 11년차인 하흥규(68)씨다.

인생의 절정을 맛볼 나이인 58세에 루게릭병에 걸려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불치의 병과 싸우면서 느낀 자신의 감정을 시로 쓰고, 그 시들을 모아 시집을 출간한 것이다.

하씨의 시집 출간은 지난 2008년 루게릭병으로 동의대한방병원에서 입원 치료 중 천상병 시인의 시집 ‘귀천’을 읽고 병상에서 시를 쓰는 것에서 시작됐다. 지난해 9월엔 ‘한국문학시대’ 제50호에 ‘물봉선화’외 4편의 시를 발표해 2017 한국문학시대 우수작품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하씨는 “글을 쓰기 시작하니 머릿속 기억들이 모두 살아나고 보이는 모든 것들이 새롭게 보이고 아름답게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글을 쓰는 동안 점점 나빠지는 아픔을 잊을 수 있었으며 내 삶의 보약 같은 활력소가 되었습니다”고 밝혔다.

실제 시집은 지난 10년 동안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그가 병에 걸리기 전에는 몰랐던 세상의 아름다움에 눈 떠가는 과정이 담겨져 있다. 그의 시편들에는 2008년 발병 때부터 지금까지 얼마나 열심히 루게릭과 싸우고 있는지가 잘 드러나 있어 가슴 뭉클하게 한다.

죽음이 언제 닥칠지 모르는 공포가 그에게는 “결함있는 삶이 어떻게 충만해질 수 있는지, 깨진 꿈이 어떻게 우리를 더 완전한 상태로 깨어나게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게 해주는 스승이 됐다. 시집 제목‘무시듬’은 하씨의 고향 마을 이름을 붙인 그의 표제시에서 따왔다.

하씨는 “한 송이 꽃도 설한풍과 용광로 같은 뙤약볕, 장맛비를 맞으며 참고 견디어 한 열흘 꽃피웁니다. 풀꽃 하나 나무 한 그루가 꿈을 이루려는 노력의 대가로 제 생명을 연장시켜주고 있습니다”고 언급했다.

시집이 출간됐지만 하씨는 여전히 전신마비의 불치병에 걸려 시한부 인생을 살아야 한다. 다만 숨쉬는 동안의 소원 중에 하나였던 시집을 낸 만큼 앞으로 더 넓고 깊고 높은 심미적 감성으로 우주안에 존재하는 유무형의 가치를 노래하는 시들을 더 쓰고 싶다고 했다.

▲ 하흥규 시인
▲ 하흥규 시인

하씨는 “혼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어도 눈 뜨고 잘 때까지 시집을 놓지 않고 좋은 표현은 메모하고 써보니까 시 맛을 어렴풋이 알게 됐다”며 “난치병을 앓고 있는 만큼 시집 이외에도 장애인 분들과 희귀난치병으로 고통받는 많은 분들께 도움이 되는 글을 써보고 싶다”고 말했다.

하씨의 시집‘무시듬’에는‘무시듬 내 고향’, ‘꽃은 피고 지는데’,‘느그들은 그리 살지마라’,‘떠나리라’, ‘여보 미안해’ 등 5부에 걸쳐 100편이 담겼다.

하씨는 투병의 고통과 외로움에 대처하기 위해 내면의 참된 자신을 믿으며 삶 자체에 깨어있었다. 자신에게 찾아온 병을 통해 인생의 남은 날들을 새롭게 설계했다. 더 나아가 루게릭병 환자라는 사실을 온 마음으로 인정하고 병 극복의 역량을 키우고, 병을 인생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로 만들고 있다.

하흥규씨는 경남 밀양 출신으로 1976∼2007년 포스코에서 근무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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