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재휘논설위원
▲ 안재휘 논설위원

‘이혼 숙려기간’이란 제도가 있다. 이혼이 드물지 않게 된 현대의 세태에 맞게 협의이혼 당사자가 일정 기간(양육해야 할 자녀가 있는 경우는 3개월, 그런 자녀가 없는 경우는 1개월)동안 좀 더 생각해보라고 주는 숙고의 시간을 말한다. 지난 2008년 도입된 이 제도는 대체로 ‘홧김 이혼’ 등 결혼생활의 성급한 파경을 예방하는 효과를 뚜렷하게 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유한국당이 전원책 조직강화특위위원 해촉 후폭풍으로 어수선하다. 애초부터 ‘차도살인(借刀殺人)’을 위해 잠시 빌린 칼이 아니냐는 의심 속에 ‘실패’하리란 비관이 무성했었다. 방송해설가 기질을 그예 참지 못하고 무슨 독립군 선봉이나 된 것처럼 나서던 모습부터 이상했다. 칼을 치켜들고서 그렇게 말이 많은 무사를 무서워할 악어가 세상에 어디 있나.

전원책 사태를 전후해 수면 위로 급상승한 계파전쟁 양상은 한국당이 위험한 휴화산이라는 사실을 입증한다. 보수정치를 말아먹은 시절의 아귀다툼 의식에서 한치도 변하지 않았다. 물속에서 음험한 눈알만 뻐끔거리고 있었던 악어떼같다. 세월이 흐르기를 기다리고, 농단 행태가 국민의 기억에서 잊히기를 기다리고, 진보정권의 실수만을 기다리고 있는 구시대적 처신으로 읽힐 따름이다.

오늘날의 한국당은 반성도 개혁도 안중에 없이 옛 영화만 회억하며 썩은 이빨을 갈고 있는 늙은 사자 집단같은 이미지다. 이런 희귀한 정치패를 바라보는 민심은 어떻게 흐를까. 우선 전 변호사를 바라보는 시각이 대체로 곱지 않다. 고난도의 미적분 기술로 풀어야 할 복잡한 수학문제를 유치한 덧셈 뺄셈으로 풀려고 대들었다가 망신당한 꼴이라는 비판도 있다.

대다수의 비평이 김병준 비대위원장을 함께 겨냥한다. 특히 그 서투른 용병술이 입방아의 대상이 된다. 미상불, 자유한국당은 정치권 안팎에서 우스갯거리가 되고 있다. 김 위원장으로서는 범친박 쪽에서 나오는 “무너진 집수리 공사를 맡겼더니 현장 공사감독과 배관공이 싸우는 꼴”이라는 비웃음은 견디기가 참으로 버거울 듯하다.

김수민 바른미래당 원내대변인의 논평이 송곳같다. 김 원내대변인은 “한국당의 쇄신을 위해서는 죽음이 필요했다. 그런데 죽은 줄만 알았던 한국당이 벌떡 일어났다. 알고 보니 죽은 척하고 있었던 모양”이라며 전원책을 ‘불행한 장의사’라고 지칭했다. 그는 “그(전원책)가 떠난 폐가엔 다시 좀비들의 노래, 구태보수의 찬송가가 흘러나온다”고 힐난했다.

삼성그룹 회장 이건희가 “(한국의)정치는 4류, 행정은 3류, 기업은 2류”라고 평한 것은 지난 1995년이다. 이 발언은 이후 한동안 삼성에 적잖은 시련을 안겨주었지만, 대국민 이미지 향상엔 크게 기여했다. ‘정치는 4류’ 주장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이 평가에 대해서 고개를 끄덕이는 국민이 많다는 것은 비극이다.

자유한국당은 패색이 짙은 장기판, ‘낡은 보수’라는 대마(大馬)가 잡혀 더 이상 희망이 없는 바둑판에 미련을 버려야 한다. 그래야 갈 길이 보인다. 김병준 비대위의 출범으로 ‘혹시나’ 하고 기대했던 국민들은 이번 조강특위 파동으로 ‘역시나’ 하고 고개를 떨궜다. 제아무리 옳은 말이라고 해도 구시대의 관점에서 내놓는 모든 말들은 ‘수구꼴통’으로 몰리게 돼 있다.

이제는 판을 엎을 시간이다. 현존하는 권력의 모순을 스스로 치유할 수 없을 때 국민여론은 정치권에 해산명령을 내린다. 국민들은 지난해 ‘대통령 탄핵’이라는 끔찍한 일을 겪고도 한국당을 아주 버리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제 그 인내의 ‘숙려기간’은 모두 지나갔다. 한국당 앞에는 ‘헤쳐 모여’로 가는 갈림길만 남았다. ‘정계 재편’ 말고 길이 없다. 혁신이 무섭고, ‘수구보수’의 옛 영화만 그리운 이들은 이제 정치무대에서 내려와야 한다. 새로운 깃발을 올려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