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동열 야구대표팀 감독 사퇴
KBO “전혀 예상 못했던 일”

▲ 선동열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14일 오후 서울 강남구 한국야구위원회에서 열린 긴급 기자회견에서 국가대표팀 감독직 자진사퇴 의사를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선동열(55) 한국 야구대표팀 감독은 애써 분노를 억누르는 듯했다.

선 감독이 취재진 앞에 선 시간은 1분 30초 정도였다. 질문도 받지 않았지만, 그가 느낀 분노의 크기는 충분히 전달했다.

선 감독은 14일 오후 2시 30분, 서울시 강남구 도곡동 야구회관 기자실로 들어왔다. 야구대표팀 전임감독에서 물러나겠다는 의사를 전하기 위해서다.

준비해 온 사퇴 기자회견문을 펼친 선 감독은 “저는 야구국가대표 감독직 사퇴를 통해 야구인의 명예와 아시안게임 야구 금메달의 명예를 지키려 한다”고 운을 뗐다.

그는 “정운찬 KBO 총재께 방금 사퇴 의사를 전했다. 자세한 내용은 별도의 기자회견문을 통해 말씀드린 그대로다”라며 “그동안 인간적으로나 많은 부분에서 부족한저를 응원해준 분들께 감사하다”고 했다.

준비한 사퇴 기자회견문은 더 길었지만, 선 감독은 중도에 접고 출구 쪽을 향했다.

취재진의 질문이 이어졌다. 그러나 선 감독은 웃으며 “사과문으로 다 말씀드린 것 같다”고 손을 내저었다.

선 감독은 7월 한국 야구대표팀의 사상 첫 전임감독으로 취임했다. 임기는 2020년 도쿄올림픽까지로 정했다.

선 감독은 대표팀 전임감독으로 부임하며 KBO에 “프로 구단에서 영입 제의가 와도 가지 않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국가대표 전임감독’은 많은 야구인이 염원했던 일이었다.

국가대표 전임감독을 뽑으며 “현역 시절 ‘국보 투수’로 불리고, 프로야구 사령탑(삼성 라이온즈)으로도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선 감독이 적임자라는 평가”도 나왔다.

선 감독은 2017년 11월 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APBC)에서 처음으로 대표팀 지휘봉을 잡아 한국을 준우승으로 이끌었다.

이 대회는 만 24세 이하 한국, 일본, 대만 프로야구 유망주들이 실력을 겨루는 대회였다.

선 감독은 당시 대표 선수들을 바탕으로 2020년 도쿄올림픽 대표팀을 뽑겠다며 한국 야구의 유망주들에게 기대감을 보였다.

하지만,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기간에 선 감독을 향한 여론이 냉담해졌다.

한국 야구대표팀은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땄지만, 선발 과정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졌다.

급기야 선 감독은 10월 10일 국정감사에 일반 증인으로 출석했고, 손혜원 국회의원으로부터 “사과하거나 사퇴하시라”는 호통을 들었다. 당시 선 감독은 손 의원에게 당당하게 맞섰다.

이후 정운찬 KBO 총재도 10월 23일 국정감사에 출석했다. 정 총재는 ‘전임감독제, 국가대표 감독이 TV로 경기를 지켜보는 문제’에 대해 손혜원 의원의 문제를 제기하자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전임감독제가 한국 야구에 맡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TV로 야구를 본 건) 선 감독의 불찰”이라고 답했다.

선 감독은 정 총재의 발언에 충격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선 감독은 사퇴 기자회견문에도 “불행하게도 KBO 총재도 국정감사에 출석해야만했다. 전임감독제에 대한 총재의 생각, 비로소 알게 됐다. 사퇴가 총재의 소신에도 부합하리라 믿습니다”라고 적었다. 당시 총재의 발언으로 받은 충격이 드러나 있는 문장이다.

선 감독은 손혜원 국회의원의 ‘조언’을 모두 받아들여 사죄하고, 사퇴했다. 정운찬 총재의 개인적인 생각대로 ‘한국 야구 현실에 맞지 않는’ 전임감독제를 없애고자, 사퇴를 택했다.

선 감독의 자진사퇴에 KBO도 충격에 빠졌다.

장윤호 KBO 사무총장은 “총재와 저, KBO 직원 모두 선 감독의 사퇴를 예상하지 못했다. 총재가 오늘 문을 나서려는 선 감독을 막아서면서까지 사퇴를 만류하며 ‘도쿄올림픽까지는 팀을 맡아달라’고 부탁했다”며 “차기 감독에 대해서는 생각할 틈조차 없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