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변창구대구가톨릭대 교수·국제정치학
▲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교수·국제정치학

북한의 비핵화를 위한 북미협상이 상당히 장기화되거나 최악의 경우에는 무산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증대되고 있다. 미국과 북한은 비핵화의 절차와 방법을 둘러싸고 한 치의 양보가 없다. 북한은 고위급 또는 실무회담에서 ‘대북제재 완화문제’를 다뤄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미국은 ‘선 비핵화 후 제재해제’에서 물러서지 않으려 한다. 양국은 ‘비핵화 조치’와 ‘제재완화 및 안전보장’에 대한 이견(異見)을 좁히지 못하여 결국 지난 8일 뉴욕에서 열기로 발표되었던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의 고위급회담이 연기됐다.

북미협상이 지지부진하자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이 핵실험을 하지 않는한 협상이 오래 걸려도 상관없다”고 하면서 협상의 장기전에 대비하고 있음을 여러 차례 밝히고 있다. 북한 역시 중국 및 러시아와의 전통적인 협력관계를 복원하여 협상력을 제고함으로써 미국과의 장기전에 대처하고 있다. 북한은 이른바 ‘살라미 전술(salami tactics)’로서 협상을 오래 끌면서 파키스탄이나 이스라엘처럼 사실상 핵보유국임을 인정받으려 한다는 우려가 증대되고 있다.

이처럼 북미협상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면서 상당히 우려되는 상황들이 발생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북한의 비핵화를 공동노력으로 견인해야 할 ‘한미공조에 균열’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남북협력’은 미국이 공들이고 있는 ‘북미협상’보다 앞서나감으로써 한미동맹이 삐꺽거리고 있다는 사실은 ‘불편한 진실’이다. 또한 정부의 중재외교는 ‘잘하면 술이 석 잔이고, 잘못하면 뺨이 석 대’이다. 만약 중재외교가 실패할 경우에는 동맹국도 잃어버리고 국가안보도 위험에 빠뜨리는 어리석음을 범하게 된다. 이 점은 북핵 ‘위협의 당사자인 한국’이 ‘제3자적 입장의 중재외교’를 추진함에 있어서 항상 유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또한 북미협상의 장기화는 방위력과 안보의식의 약화를 초래할 수 있다. 북한의 비핵화과정에는 실질적으로 아무런 진전이 없고 여전히 갈 길이 아득한데,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으로 인한 화해무드로 마치 한반도에 평화가 온 것처럼 ‘평화의 착시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북한의 비핵화 협상은 이제 시작단계에 불과한데 벌써 일부 언론에서는 곧 통일이나 될 것처럼 북한에 대한 투자와 관광을 보도하고 있다. 더욱이 최근 13개 진보단체들은 ‘백두칭송위원회’를 결성하고 서울의 한 복판인 광화문에서 ‘김정은 만세’를 외치고 있다. 나라의 안보를 심각하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북핵협상의 장기화가 초래하고 있는 부작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그 핵심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가 반드시 이루어지도록 우리의 외교역량을 발휘하는 한편, 만약 협상이 실패할 경우에 대비해서 국방력을 지속적으로 강화하는데 있다. 중재자를 자임하고 있는 정부는 북미협상의 교착상태를 조속히 타개해 협상이 추동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양측에 설득력 있는 협상안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또한 정부는 협상이 장기화되면서 제기되고 있는 다양한 대내외적 갈등요인들을 잘 관리할 수 있는 대책도 함께 강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정부는 이러한 중재외교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비핵화 협상이 실패로 끝날 경우에도 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 ‘협상의 실패’란 북미간의 ‘비핵화협상 자체가 결렬’될 경우 뿐만 아니라, 협상이 북핵의 ‘폐기가 아니라 동결로 타결’될 경우를 의미한다. 이 둘 중에 협상이 어느 쪽으로 끝나도 우리는 북핵의 인질이 됨으로써 안전을 보장받지 못한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우리는 비핵화협상이 진행되는 가운데서도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