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깜이 예산’으로 변질되고 있는 남북협력기금이 정치 쟁점으로 떠올랐다. 정부가 제출한 내년도 예산안 중 남북협력기금 총 1조977억원 중 비공개사업 부분은 5천393억원(49.1%)으로서 절반에 달한다. 비공개예산 비중은 현 정부 들어 급상승했다. 지난해 기금의 16.2%에서 올해 26.5%로 올랐다. 문제는 비공개를 빌미로 예산이 마구 전용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비공개’가 마구잡이 예산 전용의 ‘면죄부’로 둔갑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야당은 정부에 비공개 예산의 세부내역을 요구하지만 정부·여당은 오불관언이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비경제부처 부별심사에서 “과거 북측에서 남측 언론보도 등으로 확인된 (사업예산)금액을 제시하면서 그 금액만큼 어떤 사업을 하자고 요구해 온 경우가 있었다”며 “우리 협상력이 상당히 저하되고 끌려가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협상전략이 노출될 수 있다는 게 비공개의 명분이다.

그러나 통일부가 비공개 항목으로 편성한 예산이 규정을 위반하고 전용된 사실이 드러난 것은 심각한 문제다. 통일부는 비공개 항목으로 편성한 올해 ‘경협기반 무상 예산’ 2천350억7천300만원 중 약 1천210억원을 금강산 기업 피해 지원에 썼다고 밝혔다. 남북 철도·도로 협력, 남북경협 기반시설 구축 등에 활용하기로 한 돈을 기금 운용계획안 어디에도 없는 남한기업 지원에 쓴 것이다.

누가 봐도 규정을 어긴 예산 전용임에도 통일부는 내역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지난 9월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개·보수에도 건립비용과 맞먹는 약 100억원을 쓰고도 상세내역을 공개하지 않았다. 남북협력기금을 마음대로 써도 되는 쌈짓돈쯤으로 여기는 듯하다. 전직 대통령과 고위관료를 줄줄이 형사처벌한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전용과 무엇이 다르냐는 비판이 나올 지경이다.

통일부 장관을 위원장으로, 각 부처 차관 12명, 장관 추천 민간위원 5명(시민단체 출신 4명) 등 18명으로 구성된 남북교류협력추진협의회가 국회의 감시도 없이 남북협력기금을 떡 주무르듯 하는 구조도 문제다. 강석호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은 “국민 세금으로 조성된 남북교류협력기금이 마치 북한의 예산인 것처럼 협상 대상이 돼선 곤란하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강 위원장은 “남북철도 연결사업에 기금이 사용될 경우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 2375호에 저촉될 가능성도 높다”고 우려했다. 남북협상을 뒷받침하는 예산이라는 특수성을 십분 감안하더라도 전체 남북협력기금의 절반이 ‘비공개’라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더욱이 마구 전용할 수 있는 특권을 부여하는 예산이라면 매우 부적절하다. 세밀한 예산심사와 철저한 감시 감독 장치가 반드시 수반돼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