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시 주최 행사장에 휠체어 운행 도우미 한 명 없는데다
무대 경사로마저 설치 않는 등 주먹구구식 진행으로 ‘원성’

포항시가 주최한 ‘제38회 장애인의 날 행사’가 주먹구구식으로 진행돼 비난의 목소리가 높다. 지역 장애인들은 “장애인의 날이었지만, 정작 장애인은 뒷전이었다”며 “오히려 장애인으로서의 현실적 무력감만 느꼈다”고 한탄했다.

지체장애인 A씨는 지난 2일 포항 기쁨의교회 비전홀에서 열린 ‘장애인의 날 행사’에서 불쾌한 경험을 했다. 1년에 딱 한 번 있는 ‘장애인의 날 행사’를 손꼽아 기다렸지만, 이날 행사장에 도착하면서부터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다. 행사장 앞에 도착해 자가용에서 내려 휠체어로 갈아탈 때까지 도와주는 자원봉사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행사 진행도 장애인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었다. 무대에 휠체어가 오를 수 있는 경사로가 설치되지 않아 장애인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장애인 헌장 낭독’을 무대 밑에서 진행하는 모습을 보고, 무력감을 뼈저리게 느껴야 했다.

다른 장애인 B씨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장애인들은 수시로 약을 먹어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참석자들에게 생수 한 병조차 제공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자원봉사자에게 물을 좀 달라고 부탁했으나, “복도에 있으니 직접 떠서 드시라”는 황당한 답변을 듣고, 행사장 문을 박차고 나와 그대로 귀가했다.

A씨는 “지체장애인 협회에 요청하면 무료로 대여할 수 있는 이동식 경사로를 ‘장애인의 날 행사’에서 준비조차 하지 않은 것을 보니 우리를 위해 배려하는 마음은 처음부터 없었던 것 같다”면서 “부실한 점심도 말이 많았다. 그 추운 날 달랑 비빔밥 한 그릇을 식사로 내놓은 것은 너무하지 않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확인 결과 포항시는 올해 장애인의 날 행사에 3천만원의 예산을 배정했다. 이는 초청가수 출연료 500만원, 장소와 방송장비 대여비 300만원, 식비 800만원 등에 쓰였다. 정작 장애인들의 편의를 위해 사용된 돈은 버스 대여 비용 420만원이 전부다. 실제로 현장에 있던 장애인들은 행사장 내부에 물이 준비돼 있지 않아 불편한 몸을 이끌고 복도로 나가야만 했다.

포항시 장애인단체협의회 역시 이번 장애인의 날 행사가 장애인이 겪게 되는 비참한 현실을 다시 한 번 느끼게 해줬다며 포항시의 허울뿐인 행정을 비난했다.

포항 장애인단체 협의회 한 회원은 “최소한 장소를 정하거나, 어떤 식으로 행사를 진행할지 장애인단체들과 상의할 필요가 있었다”면서 “가뜩이나 지방선거 때문에 6개월이나 미뤄진 행사를 이런식으로 진행한 포항시의 행정에 한숨만 나올 뿐이다”고 꼬집었다. 이어 “앞으로는 시가 장애인 단체장과 협의 등을 거쳐 우리가 즐길 수 있는 행사를 만들어줬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포항시는 이번 행사가 기존과는 달리 문화공연에 초점을 맞춰 진행했기 때문에 장애인들이 어색해했던 것 같지만, 전체적인 행사의 질은 올해가 작년보다 더 좋았다고 평가해 장애인들과의 심각한 온도차를 드러냈다. 특히, 시는 무료로 설치할 수 있는 경사로 설치에 대해 “예산 300만원이 소요돼서 하지 못했다”는 면피성 발언을 하기도 했다.

포항시 관계자는 “지난해까지는 수자원공사가 행사에 필요한 물을 지원해줬지만, 올해는 지원이 끊겨 축제 예산안에서 물을 구매해야 했다. 참석자 1천200명에게 제공할 물을 사기에는 물값이 너무 비싸 구매하지 못 했다”며 “다만, 경사로를 설치하지 못한 것과 자원봉사자들의 봉사가 어설펐던 점 등은 인정하고 부족한 부분에 대해서는 개선하려고 노력할 계획이다”고 전했다.

한편, 이날 장애인단체들은 행사참여인원이 500명가량 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포항시는 행사가 열린 기쁨의교회 비전홀의 정원 700명을 훨씬 뛰어넘는 1천200명이 참석했다고 주장해 예산집행과 관련한 논란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시라기자 sira115@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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