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희룡 <BR>서예가
▲ 강희룡 서예가

2년 전 촛불집회는 현대사에서 우리 사회를 몰아쳤던 가장 큰 사건이었다. 본래 인간의 삶 속에서 스스로를 희생하면서 세상의 어둠을 걷어내는 상징적 의미를 지닌 촛불은 집회에서도 그 의미를 발했던 것이다. 지난달 29일 박근혜 정권을 몰락시켰던 촛불집회가 2주년을 맞았다. 광화문 광장에는 다시 적폐청산을 외치며 촛불혁명을 완수하자는 진보단체들과, 박 전 대통령의 탄핵은 사기라며 석방 주장과 함께 노동자와 자영업자까지 다 파괴하는 문재인 정권은 물러나라는 보수단체들의 맞불 집회가 열렸다. 이들 양 단체는 이 촛불집회를 진보측은 혁명이라 일컫고, 보수 쪽에서는 쿠데타라 일컫는다.

서로가 자기들의 주장이 옳다고 하는 상황에는 반드시 모함이 있다. 이 모함이 일어나는 것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시기심이나 사욕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의심 때문이다. 시기심이나 사욕으로 인한 경우는 스스로가 소인배의 도량을 벗어나지 못하니 어쩔 수 없겠지만 의심으로 인한 경우는 조금 더 객관적이 되고자 하는 노력만 기울인다면 얼마든지 피할 수 있다. 의심은 또 다른 세상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이 촛불집회에 대해 여러 시각이 있으나 혁명도 아니고 쿠데타도 아니다. 국정농단에 대한 국민들의 저항과 축제, 투쟁과 놀이가 함께 전개된 매우 독특한 양상의 집회로 더 성숙된 민주주의를 이 사회에 안착시킨 국민의 집회인 것이다. 한국에만 있는 10월 유신, 4·19혁명, 5·16 쿠데타 등의 단어는 정치인들이 인기나 표를 안중에 두고 자기의 이념성향에 따라 마구 결정지어 부르다 보니 같은 사건이라도 그 명칭과 뜻이 서로 상반된다.

‘유신(維新)’이란 말이 가장 먼저 쓰인 것은 ‘서경, 하서(夏書), 윤정편’이다. 윤후가 하왕(夏王)의 명령으로 희화를 치러 갈 때의 선언으로 치게 된 목적을 설명하고, 그 곳 관리들과 백성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만들어진다. 당시 괴수인 희화 한 사람을 제거함으로써 무고한 백성을 화에서 구제하는 것이므로 그의 위협에 못 이겨 본의 아닌 과오를 범한 사람은 일체 죄를 묻지 않는다고 선언한 다음, 오래된 더러운 습성을 모두가 함께 씻어내어 새롭게 하자고 한 단어인 ‘함여유신(咸與維新, 다 함께 새롭게 하자)’에서 유래됐다. 이 말이 독특한 뜻을 처음 갖게 된 것은 ‘시경, 대아(大雅) 문왕편’에 의해서다. ‘유’는 발어사(發語辭)로 별 뜻이 없으므로 유신은 결국 ‘새롭다’라는 뜻이다. 이것이 후대로 전해 오면서 유신이란 말만이 갖는 독특한 의미를 갖게 되며,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대학, 신민장(新民章)’에 ‘시에 말하기를, 주나라가 비록 옛 나라이나 그 명이 새롭다.’라고 인용되어 있기 때문이다.

혁명은 천명(天命)이 강조되고 역성혁명까지 거론되고 있는 ‘서경(書經)’이다. 서경은 민의를 근간으로 하는 혁명의 근거를 천명에 두고 있다. 곧 은주혁명(殷周革命)의 역사는 천명의 귀추에 의해 결정된 것으로, 천명이 은을 떠나서 주로 돌아간 것이라는 견해가 천명 정치론이다. 이에 관한 내용이 자세히 설명되고 있는 것이 서경의 오고(五誥)이다. 때문에 서경에는 민본주의가 강조되고, 아울러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는 말이 서경 ‘태서상편’에 처음으로 등장하게 된다. 이에 반해, 쿠데타는 무력으로 정권을 빼앗아 지배 계급 내부의 단순한 권력 이동을 말함으로 체제변혁을 목적으로 하는 혁명과는 구별된다.

사람은 자신을 돌아볼 줄 아는 존재이다. 삶의 지혜는 단순히 오래 살았다고 해서 저절로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혹독한 내면의 성찰을 통해 숙성된 지혜라야 전인(全人)의 원숙한 삶이 된다. 동일한 사건을 두고 위정자나 법관, 또는 언론에 의해 이념성향에 따라 명칭이 함부로 왜곡되게 결정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역사는 입증 가능한 자료에 의해 객관적인 진실로만 기록되어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