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 종 오

아침에 남편과 아내는

아파트에서 나와 각각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자마자

지하도로빨려들어가고

표정을 지우고 각각

지하도를 걸아가자마자

지하철로빨려들어가고

머리를 비우고 각각

지하철을 타자마자

터널로빨려들어가고

가슴을 놓아두고 각각

터널을 나가자마자

연결통로로빨려들어가고

오장육부로 덜어놓고 각각

연결통로를 뛰자마자

회전문으로빨려들어가고

이목구비를 벗어놓고 각각

회전문을 돌자마자

엘리베이터로빨려들어가고

사지를 내려놓고 각각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자마자

컴퓨터로빨려들어가고

현대사회의 속도감과 반복되는 일상의 단순함, 단절과 건조한 생활상을 고발하는 시인의 목소리를 듣는다. 하루 종일 감동없이 이런저런 공간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현대인들이 반복되는, 부끄러운 초상을 말하면서 그 뒤에 혹은 끝에 우리에게 돌아오고 남겨지는 것은 무엇일까 하는 의문을 펴고 있다. 깊이 공감되는 작품이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