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한동경북대 명예교수 정치학
▲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 정치학

2018년 제12회 광주 비엔날레가 9월 7일부터 11월 11일까지 66일간 개최된다. 우리 일행은 여수 오동도를 거쳐 광주 비엔날레 전시관을 찾아보기로 했다. 널찍하게 자리잡은 지하 전시실에는 여러 나라 작가들의 작품이 빼곡히 진열돼 있었다. 작품의 주제는- 상상된 국가들/모던 유토피아, 경계라는 환영을 맞이하며, 종말론: 포스트 인터넷시대의 참여정치, 귀환, 지진: 충돌하는 경계들, 생존의 기술, 북한미술 등 7개 전시실에 배열됐다. 주제에서 보듯이 비엔날레에 참여 작가들은 현대인들의 고통과 갈망을 다양한 방식으로 표출하고 있었다.

미술 작품에 대해 식견이 부족한 탓인지 나는 북한 미술에 가장 관심이 끌렸다. 북한의 예술전반에 관한 초보적인 이해는 선행돼 있기 때문이다. 북한미술은 동양화를 북한식으로 발전시켰다는 의미에서 북한에서는 ‘조선화’라고 부른다. 이번에 전시된 북한미술은 4개 부문의 작품으로 분류돼 전시됐다. 북한의 미술은 ‘주제’를 선명하게 부각하기 위한 주제화,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산수화, 소형의 그림에다 작가의 시나 소회를 써 넣은 문인화, 화조나 조선호랑이를 즐겨 그린 동물화로 분류 전시됐다. 전시장에는 우리가 접하기 쉬운 산수화나 동물화보다 대형 주제화가 주종을 이루고 있었다. 이북 5도 실향민들과 여성 탈북자들과 함께 참여한 작품 감상에는 미묘한 감정이 들었다.

우리는 북한 주민들이 노동하는 장면을 그린 주제화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주제화는 북한의 작가들이 북한사회의 인민 대중들의 노동하는 장면을 그림을 통해 부각하고 있다. 북한 작가들이 그린 대형 주제화에는 ‘인민들이 혁명을 위해 열성적으로 노동’하는 장면이 당의 방침인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에 따라 표출돼 있었다. 이러한 대형 주제화는 여러 작가들이 공동의 집체화된 형태로 작품을 완성한다. 협업을 통해 작업기간을 단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림 속 건설현장에는 남녀노소가 참여하고 그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밝은 표정이다. 작가들이 노동의 신성함, 협동성, 혁명성에 대한 기대를 담으려는 의도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마르크스 초기부터 강조한 ‘노동 해방’이 오늘의 북한 땅에서도 구현되지 못한 현실을 그들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씁쓸한 감정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러나 북한 미술 전시실에는 우리의 평소의 편견을 깨는 그림도 더러 있었다. 북한 미술작품에도 체제의 선전이나 획일성에서 벗어난 그림이 눈에 띄었다. 우리 미술 사학자들이 북한에는 사대부의 유물인 문인화는 그 전통이 단절됐다고 보았다. 그러나 당이 포용하는 범위에서 북한에도 문인화가 살아 있음을 이번 전시회는 보여줬다. 북한의 문인화는 운봉 리재현에 의해 계승돼 부채그림과 비슷한 형태로 작가의 시, 소감 등의 글귀가 담겨 있었다. 현장의 큐레이터는 스승과 제자가 그린 금강산 산수화에도 처리 기법은 상당히 다르다고 설명했다. 이는 북한 미술은 천편일률적이라는 외부의 비판이 빗나갔음을 말해 주며 우리가 북한 미술이 무조건 체제 선전에만 매몰됐다고 비판하는 것도 잘못된 시각임을 입증한다.

이번 비엔날레의 의의는 북한 미술이 세계 최초로 남한에서 전시됐다는 점이다. 더욱이 이번 북한 미술이 남한 광주 비엔날레에서 처음으로 공개됐음은 남북관계의 상당한 변화의 증좌이다. 서방 미술이 추상화된데 비해 북한의 미술은 사실주의에 입각해 누구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남북의 문화 예술분야의 교류가 활성화될 가능성이 높다. 남북관계에서 정치적 대화도 중요하지만 예술분야의 교류와 협력은 상대에 대한 이해의 폭을 훨씬 넓힐 것이다. 예술 분야의 보다 활발한 교류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