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재휘논설위원
▲ 안재휘 논설위원

관직사냥(獵官)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지난 대통령선거에서 문재인 캠프에 얼쩡거렸던 사람들이 ‘낙하산’을 타고 소리없이 공기업 임원을 비롯한 고위직에 내려앉은 일이 비일비재하다. 바른미래당이 지난 25일을 ‘낙하산 근절의 날’로 지정하고 문재인 정부의 캠코더(캠프·코드·더불어민주당) 인사(人事)를 집중적으로 폭로했다. 바른미래당이 밝힌 현 정부의 ‘낙하산’ 현상은 전 정권보다 더하면 더했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는 내용이다.

바른미래당이 공개한 ‘낙하산·캠코더 인사 현황’에 따르면 문 정부 출범 이후 임명된 공공기관 낙하산은 최고위 임원 364명의 44%인 161명(기관장 94명·감사 67명)으로 파악됐다. 이는 국회 상임위별로 소관 공공기관 340곳의 신규 상임·비상임 이사 1천722명을 전수조사한 결과다. 김관영 바른당 원내대표는 “올 9월까지 문 정부 1년 4개월 동안 박근혜 정부 초기 2년보다 더 많은 낙하산 인사가 이뤄졌다”고 비판했다.

이명박 정부의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 박근혜 정부의 정피아(정치인+마피아)라는 풍자적 네이밍으로 여론에 끈질기게 오르내리던 ‘낙하산’ 논란에 우리는 넌덜머리가 나 있다. 정치권의 엽관 행태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전인수식 핑계로 못 끊어내는 고질적 악습 중의 하나다. 정권의 정책수행 효율성을 위해서 불가피한 필요악이라는 당위론도 있고, 선거전 동지들에게 해줄 게 그것밖에 없다는 현실론까지 무성하다.

관행처럼 받아들여져 온 엽관제(獵官制·spoils system)는 승자독식(勝者獨食)의 폐해로 얼룩진 우리 정치가 빚어낸 불행한 유산이다. 아무리 보아도 전문성이 부족한 인사들을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한 공직에 부적(不適)하게 갖다 꽂는 이 같은 부조리는 ‘누군가 언젠가는’ 완전히 끊어내야 할 적폐임에 틀림없다. 엽관제를 처음 시작한 미국에서는 지난 1881년 대사직을 요구했다가 거절당한 찰스 귀토가 제20대 제임스 가필드 대통령을 암살한 사건을 계기로 폐지됐다. 대신 능력기준으로 공직자를 임명하는 메리트 시스템(merit system)이 등장했다. 조선시대에도 벼슬을 얻으려고 고관대작이나 권세가를 분주하게 찾아다니는 분추경리(奔趨競利)가 극심해 ‘분경금지법’까지 만든 적이 있다. 엽관이 옳지 않다는 것은 이미 역사가 충분히 증명하고 있다.

대선캠프나 시민단체, 여당 경력이 대부분인 인사들을 갖가지 편법까지 동원하면서 정부와 공기업에 내려앉히는 행위는 국민들이 바라는 정의로운 나라, 효율적인 국가의 개념에 전혀 맞지 않다. 특히 ‘불공정’ 관행에 대해서 더이상 참지 않는 우리 국민들에게 비겁하게 과거를 핑계대는 일은 이제 용납되지 않는다. ‘누군가 언젠가는’ 끊어내야 한다는 말에 동의한다면, 왜 지금은 안 되는가. 역대정권들은 거친 ‘낙하산 논란’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필경 이 정권도 눈 질끈 감고, 귀 막고, 말없이 꿋꿋이 공직 나눠먹기에 열중할 것이다.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기묘한 묵극(默劇)이 펼쳐질 것이다. 정권이 내리꽂는 ‘낙하산 인사’ 부조리가 최근 크게 문제가 되고 있는 ‘고용세습’의 뿌리라는 주장에 동의한다. 이걸 이대로 두고서 ‘고용정의’를 말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문재인 정권은 보수정권의 낙하산 인사 폐해를 맹비난하며 권력을 잡은 정권이다. 국민들은 최소한 이번만큼은 그러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런 정권이 집권과 함께 전리품 나눠먹듯 되레 더 많은 ‘낙하산 인사’를 일삼고 있다니 어이가 없다. ‘적폐청산’을 노래처럼 불러대는 당신들의 눈에 ‘낙하산 인사’는 정녕 ‘적폐’로 보이지 않는 것인가. 아니, ‘낙하산 인사’ 행태는 당신들이 한사코 추종하는 ‘촛불정신’에 과연 부합하는가. 민심의 눈으로 묻고 또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