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희 덕

물이 빠져나간 거대한 연못

언젠가 눈에 박힌 그 풍경 나가지 않네

장화 신은 발들이

연못 바닥을 저벅저벅 걸어다니네

울컥 고이는 발자국을

검고 끈적한 진흙이 삼켜버리네

(…)

장갑 낀 손들이

바닥에 흩어진 잔해를 끌어모으네

이토록 태울 게 많았던가

번제를 올리듯 어떤 손이 불을 붙이네

타오르면서 타오르지 않는 불의 중심

명치끝이 점점 뜨거워지네

눈이 너무 매워 움직일 수가 없네

뇌수에서 썩어가던 기억의 잎과 줄기가

몇줌의 재가 되어가는 동안

장화 신은 발들이 불을 둘러싸고 서 있네

그들이 주고 받는 얘기가 들렸다 안 들렸다 하고

누구일까, 내 몸을 제물 삼아

마른 연못에서 불을 피우는 그들은

우아하고 고운 꽃을 피워올린 연(蓮)은 꽃잎 진 자리에 연밥 대궁을 올리고 가을 햇살 아래 마르다가 연못 바닥에 주저앉게 된다. 시인은 그 마른 연못에서 새로운 희망을 보고 있다. 상처를 거름 삼아 다시 일어서고 마는 연꽃을 떠올리고 있는 것이다. 우리네 삶의 모습도 비슷한 것이 아닐까.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