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
▲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

태풍이 지나간 다음날 바닷가에 나가 보고 눈을 의심했다. 지난여름 피서객들이 북적대던 해수욕장은 어디 가고 거대한 쓰레기하치장이 생겨나 있는 게 아닌가. 태풍과 홍수가 바다로 휩쓸어간 쓰레기들을 풍랑이 다시 바닷가로 밀어내어 산더미같이 쌓아놓은 거였다.

태풍이 불고 홍수가 나면 땅위의 온갖 쓰레기들이 휩쓸려 바다로 들어간다. 하지만 바다는 끊임없는 자정력(自淨力)으로 그것들을 다시 해변으로 밀어낸다. 일부 유기물은 바다생물의 영양소가 되기도 하지만 자정의 한계를 벗어난 부유물들은 거대한 쓰레기섬을 만들어 대양을 떠다니기도 한다.

인류는 쓰레기를 만들어내는 유일한 동물이다. 다른 동물의 경우 살아있는 동안에는 때때로 배설물을 남기고 죽어서는 시체를 남기는 게 고작이다. 그 배설물이나 시체는 다른 동물의 먹이가 되거나 썩어서 식물의 거름이 되는 것으로 완전한 순환을 한다. 하지만 사람들이 만든 쓰레기는 자연계의 순환을 거스르고 저해한다. 특히 플라스틱이나 스티로폼 같은 합성수지 쓰레기는 수백 년 동안이나 썩지를 않아 생태계 파괴의 주범이 되고 있다. 갈수록 적체되는 생활쓰레기는 산업폐기물과 매연, 오폐수와 함께 지구 환경과 생태계를 파괴하는 위험수위를 넘어선지 오래다.

인터넷의 상용화로 각종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가 되었다. 필요한 정보를 손쉽게 찾아볼 수 있는 편리함이 있는 반면 정보의 과잉에 따른 폐해도 적지 않다는 우려가 있다. 갈수록 범람하는 불필요한 정보의 홍수에 휩쓸려 인간의 정체성과 가치관에 심각한 혼란을 가져올 거라는 예상이다. 단순히 정보의 양이 많다는 문제가 아니라 온갖 무책임하고 악의적인 거짓 정보들과 선정적이고 왜곡된 정보들이 쓰나미가 되어 인류를 덮칠 거라는 경종이 아닐 수 없다.

원시시대에는 인위적인 정보가 많지를 않았다. 자연에서 먹잇감을 구하기 위한 정보와 맹수나 재해의 위험을 피하는 방법 정도가 고작이었다. 사냥을 하는 기술이나 먹을 수 있는 풀과 열매를 구별하는 법, 재해나 맹수를 피하기 위한 수단을 부모로부터 익히는 것이 생존을 위한 정보의 전부였다. 미개하고 단순한 정보이긴 하지만 생태계의 측면에선 가장도 자연스럽고 지속가능한 것들이었다.

불과 오륙십 년 전까지만 해도 시골에서는 가정에서 부모형제로부터 배우는 상식과 학교에서 친구들과 나누고 선생님에게 배우는 것 말고는 별다른 정보를 접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그 대신 자연에 대한 정보는 풍성했다. 보이고 들리고 만져지는 것 거의가 자연이었다. 거기에는 거짓이나 왜곡이나 과장이 없는 불변의 섭리가 있었다.

정부에서는 가짜뉴스를 규제하는 법을 만든다고 한다. 범람하는 쓰레기 정보의 홍수에 경각심을 가지고 대처한다는 측면에서는 수긍을 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국가 권력의 개입은 정치적으로 악용될 소지가 없지 않아서 언론이나 인권의 제한이나 탄압으로 비화 될 것을 우려하는 시각이 더 크다. 권력이 정보를 통제하겠다고 대놓고 나서는 것은 모양새가 좋지 않을뿐더러 가능해 보이지도 않는 일이다. 기왕의 법규에 따라 불상사가 발생했을 때마다 적절하게 대응하는 편이 반감과 반발에 부딪치지 않는 일이다.

다만 자라는 아이들이 무방비로 정보의 홍수에 노출되는 것에는 대책이 있어야 한다. 자아와 인격이 형성되는 시기에 폭력과 선정과 거짓과 왜곡으로 점철된 쓰레기 정보에 휩쓸린다는 것은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무조건 차단하고 금지한다고 될 일은 아니다. 가급적이면 건강하고 아름다운 정보를 많이 제공하는 것이 대안이고 교육이 될 것이다. 예체능 교육을 보다 활성화 하고 자연을 접할 기회를 최대한 늘리는 것이 최선이 아닐까. 아무튼 아이들이 정보의 홍수에 침몰하지 않을 건강한 정서와 분별력을 갖도록 각별한 경각심과 노력이 있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