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과 함께한 구미공단
⑦ 낙동강으로 유치된 구미공단, 구미를 발전시키다

▲ 인구 43만 도시로 발전할 수 있게 한 구미국가산업단지 모습. /구미시 제공

1978년 구미읍·칠곡군 인동면 합쳐 구미시로 승격
작은 읍에 불과했던 구미, 공단조성으로 ‘인산인해’
1971년 고용인구 1천여명에서 1979년 4만명 달해 30배 증가
2000년대 들어서 정주여건 개선에 총력
낙동강 이용 레저문화 구축, 국내 최고 수변공원 조성 목표

△구미공단, 구미읍을 시로 승격시키다

구미시가 인구 43만의 도시로 발전할 수 있었던 구미공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구미시의 연혁을 한번 살펴보면 신라 초 일선군(一善郡)으로 불리다가 616년(진평왕 38) 일선주로 승격했고, 757년(경덕왕 16) 숭선군으로 불렸다.

고려시대인 995년(성종 14) 선주(善州)로 승격되었다가 1143년(인종 21)에 일선현으로 강등되기도 했다.

조선시대인 1413년(태종 13) 선산군으로 고쳐 부르고, 그후 인접한 해평현과 합병돼 도호부로 승격했으며, 1896년(고종 32) 18개 면을 거느린 선산군으로 개편됐다. 1914년 부(府)·군(郡)·면(面) 통폐합으로 9개 면이 되었고, 1963년 구미면이 읍으로 승격됐다.

1978년 2월 구미읍과 칠곡군 인동면(仁同面)이 합쳐져 구미시로 승격·분리됐다.

1979년 5월 선산면이 읍으로 승격돼 선산군은 1읍 7면이 되었다. 1988년 해평면 일선리를 신설하고, 1995년 3월 구미시와 선산군이 다시 합쳐 현재의 도농복합형(都農複合型)의 통합시가 됐다. 작은 읍이었던 구미가 어떻게 선산군을 두고 시로 승격될 수 있었을까. 바로 구미공단이 조성되었기 때문이다.

1969년 6월부터 구미공단은 전자산업을 중점적으로 육성하기 위한 산업단지의 확충과 수출 진흥을 통한 지역 간 균형발전 및 국민경제 향상을 위해 조성됐다.

구미공단 제1단지는 1969년부터 1973년까지 약 4년간의 공사를 거쳐 조성되었고, 2단지는 1977년부터 1982년까지 약 5년간의 공사를 거쳐 조성됐다.

공단이 조성되면서 일자리를 찾아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자연히 작은 읍이 불과했던 구미는 시로 승격된 것이다.

▲ 구미시가 정주여건 개선을 위해 낙동강에 조성한 구미낙동강체육공원. /구미시 제공
▲ 구미시가 정주여건 개선을 위해 낙동강에 조성한 구미낙동강체육공원. /구미시 제공

△구미공단의 고용증대

구미공단 제1단지 조성된 1973년부터 1979년까지의 기간은 난관도 많았지만, 구미공단의 고용효과는 매우 큰 폭으로 증가했다. 1973년 한 해만 하더라도 전년에 비해 4배 가량의 고용증가를 보였고, 고용인구가 1973년 기준으로 6천790명에서 1979년에는 6배에 가까운 3만9천456명으로 증가했다.

단지건설 초기인 1971년 총 고용인구가 1천313명인 점을 감안하면 무려 30배가 증가한 것이다.

1980년 9월에 집계된 구미공단의 고용인구를 보면 가동업체수가 69개인 전자부문이 2만2천832명으로 전체의 59%를 차지하고, 가동업체수가 87개인 섬유부문이 1만5천275명으로 39%, 12개 업체인 기타부문이 2%로 나타났다.

전체적인 고용증가에는 영향을 주지 않았으나 1973년 석유파동의 여파로 구미공단의 고용은 잠시 감원사태가 발생하기도 했으나, 전반적으로 1979년까지의 고용은 큰 폭으로 증가했다.

하지만 1990년대로 접어들면서 공장자동화로 인해 생산직 근로자가 급감하게 된다. 경영 합리화를 위한 생산설비 자동화, 경기부진으로 인한 신규채용 축소 등의 영향으로 구미공단근로자수는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다.

관리 사무직에 비해 생산직 근로자수가 많이 감소했다. 1993년 기준으로 사무직은 전년에 비해 4.5% 정도인 651명이 줄었으나, 생산직은 전년대비 6.7%인 4천178명이나 줄었다.

당시 구미공단은 전년보다 가동업체수가 10개나 증가했지만 경기침체 등으로 근로자수는 6만4천264명으로 1천870명이나 줄어든 것이다. 또 인건비를 낮추려는 기업들로 인해 외국근로자들의 수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구미공단이 지속적으로 조성되면서 구미의 전체 인구수는 계속 증가했다. 구미인구는 2008년 39만9천989명, 2009년 39만6천419명, 2010년 40만4천920명으로 처음으로 40만 인구시대를 맞았다.

이후 2014년 42만320명, 2016년 41만9천890명을 기록하다 2018년 1월 42만2천106명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는 국가산업단지 5단지 준공에 따른 대규모 주건단지 조성이 큰 역할을 했기에 가능했다.

△정주여건 개선을 위한 낙동강의 변화

1990년대 구미공단 자동화로 인해 고용인구가 줄어들고, 2000년대 들어서면서 첨단산업으로 공단의 급격하게 변화하기 시작하자, 구미시는 첨단산업의 고급인력 유치를 위한 정주여건 개선에 총력을 기울인다.

도농복합도시의 장점을 극대화시키고, 산업도시, 회색도시 이미지를 벗기 위한 다양한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그 중에서도 천혜의 자연자원인 낙동강을 이용한 정주여건 개선 사업을 시작해 큰 효과를 거둔다.

구미시는 4대강 사업으로 한층 넓어진 낙동강 둔치를 활용하기 위한 첫 번째 사업으로 구미낙동강체육공원을 조성했다.

2009년 3월 착공해 2012년 5월 7일 준공한 구미낙동강체육공원은 낙동강 살리기 사업과는 별도로 국비 350억원을 들여 도심과 가까운 낙동강하천둔치에 산책로, 초화원, 체육시설, 생태습지 등 친수와 복원을 병행해 조성한 수변휴식공간을 탄생시켰다.

구미낙동강체육공원은 종합경기장 1면, 천연잔디 축구장 10면, 야구장 2면, 인라인스케이트장 1면, 인조잔디 풋살장 5면, 게이트볼장 4면, 농구장 5면, 배드민턴장 10면, 족구장 10면 등 총 9종 48면의 체육시설을 갖추고 있다.

여기에 산책로 15㎞, 자전거도로 11㎞, 이벤트 공간, 피크닉장 등 다양한 휴식공간이 있어 시민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특히, 구미낙동강체육공원 개원 첫 해인 2012년에만 14만여명이 이용했고, 그 다음해에는 30만여명이 이용했다.

현재는 연 평균 50∼60만명의 시민들이 이용하는 구미의 대표적인 명소가 됐다.

이와함께 구미시승마장, 구미캠핑장, 낙동강 수상레포츠 체험센터 등으로 구미시는 산업도시, 회색도시의 이미지를 벗고 수상레포츠의 도시라는 명성을 얻었다.

▲ 수상레포츠 체험센터에서 요트 강습을 받고 있는 시민들. /구미시 제공
▲ 수상레포츠 체험센터에서 요트 강습을 받고 있는 시민들. /구미시 제공

△구미7경6락 리버사이드 프로젝트

구미시가 낙동강을 이용한 레저문화 구축을 위해 ‘구미7경6락 리버사이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동락, 양호, 지산, 해평, 강정, 구미보, 옥성 등 7개 특화지구와 남구미, 비산, 구미보, 선산, 도개, 옥성 등 6개 수변시민공원으로 나눠 2025년까지 3단계에 걸쳐 추진될 예정이다.

수변시민공원 조성 특화 전략은 △윈드서핑, 카누, 조정 등 수상레포츠 체험 공간 조성 △물놀이장, 오토캠핑장 등 가족테마 체험 공간 △다양한 레포츠 시설 도입과 공간 조성 △익스트림 체험을 위한 공간 조성 △낙동강 인접지역의 낙후된 경관 개선 △둔치 내 쾌적한 쉼터 공간 조성 등을 주요 골자로 하고 있다.

구미시는 현재 230억원을 들여 1단계 사업으로 △낙동강 수상레포츠 체험센터 △구미 캠핑장 △낙동강 체육공원 △낙동강 실버 그린볼 파크 △강바람 물놀이장 등을 조성했다.

이어 2단계 사업은 2020년까지, 3단계 사업은 2025년까지 총 660억원을 들여 국내 최고의 수변공원 조성을 목표로 추진하고 있다.

구미/김락현기자 kimrh@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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