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9월 11일에 일어난 대사건은 지구사를 뒤흔들어 역사의 흐름을 바꾸어 놓았다. 이로써 1990년 전후 동구 사회주의 몰락 이후 지속된 ‘팍스 아메리카나’에 대한 도전이 명확해진 것이다.

미국 영화 감독 마이클 무어는 ‘화씨 9/11’이라는 다큐멘터리를 통해서 과연 그날 110층짜리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과 펜타곤에 비행기를 충돌시킨 세력은 누구냐를 따졌다. ‘알 카에다’를 이끌면서 테러를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빈 라덴은 나중에 파키스탄의 어느 도시에 은거하다 미군 특공대에 의해 사살당하고 말았다. 그런데 마이클 무어는 그날의 쌍둥이 빌딩 붕괴며 펜타곤 충돌이 테러집단에 의한 비행기 충돌만으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음을 논증하고자 했다. 그에 따르면 세계무역센터 건물은 폭파를 통한 빌딩 해체 공법에서 일어나는 사태와 아주 유사했다는 것이다. 또 펜타곤에 뚫린 구멍은 비행기가 뚫고 나간 것으로 보기에는 너무 작은 것이었다고도 했다.

과연 어떤 소수에 의한 음모에 의해서 역사는 움직여 나가는 것일까? 세월호 참사를 일종의 학살극이었다고 보는 시각을 향해 사람들은 음모론에 물들었다고 비판하곤 한다. 이 참사의 원인은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다. 미국은 베트남 전쟁을 일으키면서 통킹만 사건을 조작했고, 김일성은 일요일 새벽을 기해 전격적인 남침을 감행하면서 북침에 대한 반격이라는 알리바이를 내세웠다. 일본은 1931년 9월 18일 밤 10시 반, 류탸오거우에서 철도를 폭파하고는 이를 중국 군벌의 소행으로 몰아붙여 만주전쟁을 일으켰고, 1937년 7월 7일에는 베이징 바깥 노구교, 즉 마르코폴로 브릿지에서 총격 사건을 일으켜 중일전쟁을 이끌어냈다.

이것은 하나의 가설이지만 시민들, 민중들은 음모를 꾸밀 줄 모르고 음모 같은 것이 역사를 움직이리라고는 쉽게 상상조차 하지 않는다. 그러나 오랜 역사를 통하여 지배집단, 권력을 쥔 소수는, 음모나 그 밖의 비밀스러운 협상, 거래, 행동 등을 통하여 역사적 상황을 유리하게 이끌어가는 기술을 가꾸어 왔다.

1992년 12월 11일의 초원 복국집 사건 같은 것은 이 나라에서 대통령 선거가 어떻게 치러질 수 있는가를 보여주었고, 지난 정부에서도 국가기관을 음모적으로 운영하는 일은 비일비재했다. 며칠 전 텔레비전에서 방영되었다는, 사법 거래에 관련된 프로를 유튜브로 보았다.

어두웠던 시대에 죄 없는 사람이 고문으로 간첩 죄목을 뒤집어쓰고, 그 죄 없는 이의 삶을 송두리째 짓밟아 어떤 판사는 자신의 출세의 길을 달렸다. 백주 대낮에 그런 일을 저지르고도 하늘이 무섭지 않았던가. 자기 목숨이라면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그 방송에서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분이 그를 향해 말했다. 참 불쌍한 인간이라고.

죄 없는 사람들은 자기를 해한 자를 향해서도 이렇게밖에는 비난하지 못했다. 오늘도 어떤 음모가 이 세계를 뒤바꾸려 꾸며지고 있는지 알 수 없다. /방민호<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한국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