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순희수필가
▲ 김순희수필가

동네 찻집에 갔다. 친구가 근처에 볼일이 있어 왔다가 얼굴이라도 보겠다고 전화를 했기 때문이다.

주말이라 부스스한 몰골로 멀리 나가기는 좀 그랬다. 걸어서 가도 되는 길 건너 다방이 떠올랐다. 그곳에 자리 잡은 지 오래되었지만 그 앞을 지나 다기만 했지 처음 가 보았다.

친구는 창가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내가 막 반가운 인사를 할 즈음 주인장 남자가 주문을 받으러 왔다. 달콤한 카푸치노 커피로 메뉴를 통일하자 주인장은 철학을 몇 년 공부했다고 너스레를 떨며 서비스로 사주를 봐준다고 내 생년월일까지 주문 받았다. 잠시 후 커피가 먼저 나왔다. 뜨거운 커피가 적당히 식을 때까지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만나지 못한 시간들의 퍼즐을 맞추었다.

그러는 사이 사주풀이를 끝냈다며 우리자리로 남자가 왔다. 나는 나무의 사주를 타고 태어났다고 했다. 결혼을 하면 아들을 둘 낳을 것이란 말에 그런 것도 나오느냐고 되묻자 아들들이 그냥 내버려두기만 해도 잘 자라 효도할 거란 말도 보탰다. 두 아들의 엄마인 나는 깜짝 놀라 결혼은 이미 했고 아이가 둘이라고 말해버렸다. 둘째 아이가 태어나서 우리 집의 균형을 맞추어서 화목해진다는 것이다. 아이가 하나였으면 자주 다툼이 생기는 형국이란다. 올 한 해 외국으로 세 번의 여행을 한다고 했다. 이미 북해도와 다낭으로 여행을 다녀온 상태였고, 나머지 한 번도 계획에 있었다. 철학 공부를 하다가 용한 점쟁이가 된 것인가. 사소한 것까지 착착 들어맞는 것에 놀란 나는 어디 잘하나 보자하며 뒤로 물러나있던 몸을 세워 그 남자 앞으로 바싹 다가앉았다. 남편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 물었다. 곧 진급을 할 거라고 장담했다. 내가 가진 복으로 친정 부모가 살았는데 결혼하며 그 복을 남편이 받는다고 했다. 어머나, 내가 결혼한 다음해에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으니 그 말이 맞는 듯도 했다. 큰아들의 미래도 궁금해서 어떤 공부를 시키면 좋겠냐 했더니 기자나 공무원이 좋다고 일러주었다. 둘째는 한자리에 머무르지 못하는 사람이나 재물복이 넘쳐서 큰 부자가 될 거라는 말로 내 기분을 한껏 띄웠다. 몇 십 년 뒤 아들이 부자가 되는 것보다 더 궁금한 것이 있었다. 지금 내가 무엇을 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는지, 행복해 질 수 있는지 물었다. 그런 걸 물을지 이미 알았다는 듯 그 남자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나무의 사주이니 물장사를 하라고 했다. 물장사? 뜻밖의 대답에 뜨악해 하는 내 표정을 보고 찻집이나 술집을 하면 크게 돈을 번다고 덧붙였다. 기분이 나빴지만 장사에는 자신이 없다며 에둘러 말하자 그냥 얼굴마담으로 카운터에 앉아만 있어도 대박이 날 거란다.

남자가 자기 자리로 돌아간 후에도 나는 영 언짢았다. 내 외모가 잘 노는 사람으로 보였나, 나도 모르는 내 몸 어디엔가 숨어있던 술장사의 끼가 튕겨져 나오기라도 했나? 기분이 나쁜 것을 본 친구는 주인장이 돌팔이 같다며 잊어버리라고 했지만 마음이 나아지지 않았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철학을 공부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결혼하면 아이 둘쯤 낳는다는 걸 때려 맞출 수 있을 것 같았다. 요즘은 여행을 많이 하는 추세이니 세 번의 여행 또한 특별한 능력이 아니더라도 추리가 가능한 이야기였다. 용한 점쟁이 같던 그 남자가 내게 멋진 커리어우먼이 아닌 물장사 하란 말을 한 이후에는 파리만 날리는 자신의 찻집을 내게 넘기려는 사기꾼으로 보였다.

자리를 털고 일어서며 카운터의 그 남자에게 갔다. 커피값을 계산하면서도 나는 뚱한 얼굴로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잔돈을 건네주며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한마디를 더 던졌다.

“술집이 싫으면 정수기 대리점이라도 하소. 거, 생수 배달도 물장사구만.”

집에 돌아온 나는 남편에게 물장사이야기만 쏙 빼고 오늘 귀인을 만났다고 떠벌리기 시작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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