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주형 <br>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

바다보다 더 깊고 푸른 10월의 하늘! 나비, 잠자리, 낙엽 등 온갖 생명체들이 정적(政敵)없는 가을 하늘을 마음껏 유영한다. 그 모습은 흡사 한 폭의 그림이며, 자유 그 자체이다. 그들의 자유로움은 필자에겐 눈이 시릴 정도로 파란 10월의 하늘만큼 부러운 대상이다. 자유에 대한 동경은 인간의 근원적인 로망이지만, 결실의 계절을 맞아 자연의 자유로움이 더 부럽다.

학교에도 결실의 시간이 도래했다. 고입과 대입! 모두가 원하는 곳에서 자신이 하고싶은 공부를 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입시는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겉으로야 성적보다는 학생들의 특성과 소질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입시용 겉치레 인사밖에 되지 않는다.

우리나라 선발 입시의 절대 기준은 점수이다. 그 다음이 적성인 것 같지만 그 다음 또한 점수다. 모든 것이 점수로 시작해서 점수로 끝나는 것이 이 나라 교육이다. 이것은 태아도 아는 사실인데도 불구하고, 교육청이나 교육부, 그리고 교육 운동가라고 하는 사람들은 아직까지도 점수보다 학생이 먼저라고 거짓말을 한다.

최근 필자의 머릿속은 온통 한 학생과 나눈 이야기뿐이다. 그 이야기 때문에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요즘이다. “선생님, 이 고등학교 꼭 가고 싶어요.” “드디어 가고 싶은 고등학교가 생겼구나. 축하한다.” “네, 꼭 가고 싶어요.” “그런데, ……!” “왜요?” “점수가 힘들 것 같다.” “안 돼요. 저 무조건 갈 거예요. 꿈을 찾으라고 하셨잖아요. 이제 제 꿈을 찾았단 말이에요. 점수보다는 우리들의 가능성을 봐 준다고 하셨잖아요?” “미안하다, 선생님이 방법을 찾아는 보겠지만, 많이 힘들 것같다.” “어른들은 다 거짓말쟁이에요. 언제는 희망을 가지고 열심히 하라고 해 놓고서는 뭔가를 하려고 하면 이 핑계 저 핑계만 대고, 정말 나빠요.”

“성과보다는 과정을, 다그침보다는 기다림을,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교육”을 하겠다고 한 사람들부터라도 이 학생이 이해할 수 있는 답을 줬으면 좋겠다. 꼭 이 사람들이 아니더라도 정말 어느 누구라도 제발 이 나라의 교육은 점수가 아닌 사람이 먼저라는 이야기를 우리 학생들에게 자신있게 해줬으면 좋겠다. 그런데 필자는 절대 그렇게 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필자 또한 점수로 학생들을 서열화시키는 입시 공화국의 교사이기 때문에.

도그마(dogma)라는 말을 들었을 때 필자는 바로 교육이라는 이름을 붙여 “교육의 도그마”를 생각했다.

도그마라는 단어는 독단이라는 부정적인 뜻도 있지만, 명제, 규칙, 핵심이라는 의미도 담고 있다. 여기서 후자의 뜻을 취하여 우리나라의 교육적 도그마를 생각해보았다. 역시 답은 입시였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우리나라 교육은 “서열화된 점수에 의한 입시”로밖에 정의가 안 된다. 소위 말하는 진보교육감이 있는 몇몇 교육청에서 학생들의 인권 등으로 교육의 분위기를 바꿔보려고 하지만, 오히려 교육의 본질만 흐리고 있다.

입시 교육을 받은 젊은이 중에는 “태풍이 부럽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라디오에 나온 사연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영덕을 포함하여 많은 지역에 엄청 난 피해를 준 콩레이가 한반도에 상륙 직전에 라디오에 이런 사연이 나왔다. “태풍이 아무런 피해없이 지나가길 바랍니다. 그런데 저는 태풍이 너무 부럽습니다. 왜냐하면 태풍은 진로라도 정해져 있으니까요.”

태풍의 진로를 부러워하는 사람을 양산하는 것이 이 나라 교육일진데 과연 교육부는 물론 각 시도 교육청은 언제까지 학생 행복 타령을 할 것인지? 힘들게 입시의 강을 건너고 있는 우리 학생들을 위해서라도 우리는 다음의 질문에 대한 답을 꼭 찾아야 할 것이다.

과연 우리는 무엇을 위해 교육을 하는가? 또 어떤 교육을 하고 있는가? 정말 우리 교육의 도그마, 즉 핵심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