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성식특집기획부장
▲ 홍성식 특집기획부장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프랑스를 방문했다. 프랑스 역시 보수와 진보 성향의 대통령이 번갈아가며 집권한 내력이 한국과 비슷하다.

1995년. 좌파 미테랑의 뒤를 이어 프랑스 권좌에 오른 이는 자크 시라크. 엘리트 정치인의 정석코스로 불리는 파리정치대학과 국립행정학교를 나온 시라크는 ‘샤를 드골의 적자’임을 자처했고, 경력 또한 화려했다. 내무장관, 두 차례의 총리 경험에 파리시장으로도 일했던 시라크는 보수를 이념적 기반으로 1976년 창립된 공화국연합(RPR) 초대 총재.

그는 스스로를 ‘진보적 보수주의자’라고 불렀으나 실상은 그렇지 못했다. 주변국과의 불화에도 불도저 같은 ‘밀어붙이기식 스타일’로 독선을 행했던 게 대표적인 예다. 그 모습에서 한국 한 전직 대통령의 그림자가 얼핏 비친다.

시라크는 퇴임 후 공금 유용과 권력 남용 혐의로 프랑스 대통령 중 최초로 유죄를 선고받는 불명예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것도 한국 전직 대통령들의 모습과 겹쳐진다.

2007년. 프랑스는 2차대전 이후 출생한 전후세대를 대통령으로 뽑았다. 이민자 2세 대통령의 탄생이었다. 정치와 경제 모두에서 실용주의를 지향했던 니콜라 사르코지는 보수주의를 지향한 대중운동연합(UMP)의 대선 후보였다.

그의 선거 슬로건은 “더 많이 일하고, 더 많이 벌자”였다. ‘사르코지즘’이라 불린 실용·개방정책은 경제적 실익이 있다면 친미 정책이건, 친중 정책이건 못할 이유가 없고, 테러국으로 분류되는 국가의 수반도 만날 수 있다는 것.

사르코지는 프랑스가 “국민들은 게으르고 실업률은 높은 나라”로 평가받는 걸 못 견뎌했다. 예산장관과 내무장관 등을 지낸 젊은 대통령의 추진력은 거침이 없었다. 그러나 사르코지가 ‘개혁’이라 말하며 밀어붙인 정책은 “독단과 독선”이라는 비판과 함께 곳곳에서 저항에 직면했다. 여기서도 지난시절 한국 대통령들과의 유사점이 느껴진다.

자신이 이민자의 후손이면서도 소외된 무슬림을 비하했던 발언 역시 도마 위에 올라 사르코지를 곤경에 빠뜨렸다. 독일과 보조를 맞춰 추진했던 긴축재정 정책도 국민들로부터 환영받지 못했다. 그 때문이었을까. 사르코지는 재선에서 실패한다. 시라크에 이어 두 명의 보수주의 대통령이 보여준 한계였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이후 프랑스 대통령이 된 사람은 진보 성향의 사회당 후보 프랑수아 올랑드. 의사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판사와 변호사로 일했고, 파리정치대학 교수로도 활동했다.

사르코지와 달리 대화와 타협을 중시한 올랑드는 미테랑을 벤치마킹하는 전략으로 국민들의 지지를 이끌어냈다. “사회당은 사회당답게!”라는 슬로건은 10년 넘게 지속된 보수정권의 정책에 실망한 국민들을 매혹했다. 연봉 수백 만 유로의 공기업 경영자와 고위 공직자의 임금을 대폭 삭감하는 등 적폐청산과 경제개혁의 서막을 알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 길이 탄탄대로만은 아니었다. “개혁하려던 경제는 내리막길을 걷고, 분열만 심화됐다”는 비판이 잇따랐다. 이 역시 보수에서 진보정권으로 흐름이 바뀐 현재 우리나라 대통령의 연대기와 닮았다.

지난 15일. 문재인 대통령은 올랑드에 이어 프랑스 대통령이 된 에마뉘엘 마크롱과 만났다. 그는 좌우를 아우르며 ‘실용적 자유주의’와 ‘합리적 중도’를 표방함으로써 40대에 최고 권력자가 됐다.

문 대통령은 마크롱과의 만남에서 뭘 벤치마킹하고 어떤 걸 반면교사(反面敎師)하려 마음먹었을까?

프랑스의 현대정치사를 봤을 때 문제는 좌우도 아니고, 진보와 보수도 아니다. 보통의 국민들은 그저 실업과 실직 걱정 없이 식구들과 웃음을 잃지 않고 오순도순 살고 싶을 뿐이다. 그건 한국과 프랑스가 똑같고, 진보와 보수라는 인간의 성향과도 무관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