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루밍(길들이기·Grooming) 성범죄는 아동·청소년 대상으로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호감을 얻거나 돈독한 관계를 만들어 심리적으로 지배한 뒤 성폭력을 가하는 것을 뜻한다.

주로 가정에서 방임되는 취약 아동이나 청소년이 대상이 된다. 선물이나 고민상담 등을 통해 신뢰를 쌓은 뒤 신체접촉을 시작으로 성범죄에 이른다. 아동·청소년의 경우 인정과 애정을 받고 싶은 욕구가 강하다. 가해자는 이런 특성을 잘 알고 십분 활용한다. 그러다 보면 피해자는 그루밍을 거치며 가해자와 종속적인 관계를 유지하게 된다. 피해자는 성적 학대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범행으로 인식하지도 않게 된다. 그루밍 성범죄는 ‘교사와 제자’사이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친족 간에도 그루밍 범죄가 일어난다.

‘연예인을 시켜주겠다’며 접근해 15살 여중생과 수차례 성관계를 맺고 임신까지 하게 했다가 상습 성폭행 혐의로 2013년 재판에 넘겨진 40대 연예기획사 대표 A씨의 사례가 대표적인 그루밍 성범죄 사례다. 그는 법원에서 피해 여중생과 사랑하는 사이였다고 항변했고, 1·2심은 차례로 징역 12년형, 9년형을 선고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A씨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피해 여중생이 평소 A씨에게 보낸 편지와 문자메시지에서 ‘사랑한다’는 표현과 이모티콘 등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파기환송심을 거친 이 사건은 현재 검찰의 이례적인 재상고로 다시 대법원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그루밍 성범죄의 문제 중 하나는 처벌이 확실하지 않다는 점이다. 형법상 미성년자 의제강간 연령은 만 13세 이하로 규정돼 있어 만 13세 이상의 청소년이 합의하에 성관계를 했다고 주장하면 상대 남성을 처벌할 수 없게 된다. 아동·청소년 전문가들은 그루밍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미성년자 의제 강간 연령을 지금의 만 13세에서 미국이나 영국, 호주 등처럼 만 16세로 높이는 게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그루밍 성범죄를 소재로 한 영화 ‘동화’가 이달 말 개봉된다. 의붓 아버지의 어긋난 사랑으로부터 한 소녀를 지키기 위해 분투하는 소년 ‘동화’의 이야기를 다룬 이 영화는 그루밍 성범죄의 실상을 그대로 드러낸다.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