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의수 전 포스텍 교수
▲ 서의수 전 포스텍 교수

한국에서 가르치기 위해 지난 2010년 한국에 올 때 필자에게 풀리지 않는 질문들 중 하나는 ‘한국에서 왜 흔히 50대 중반에 정년 퇴직하는가?’였다.

필자의 학교 친구들이 50대 중반에 이르렀을 때, 퇴직하고 백수로 지낸다는 소식이 들리기 시작했다. 한국인들은 전통적으로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로 알려져 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평상적으로 6일 일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하루에 12시간 또는 그 이상 일하기도 한다.

그런데 어떻게 50대 중반에 퇴직을 하는가? 필자는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우연히 찾았다.

어느 기관의 총책임자가 새 사람으로 바뀌게 됐다. 그러자 그 아랫 사람들도 다 갈릴 것이라는 말을 어떤 사람에게 들었다.

나는 ‘대부분 능력있고 일을 잘해 오고 있는데 왜 모두 갈릴 것이라고 예상하는가?’라고 물었다.

그는 짤막하게 대답했다. “새로운 기관장의 나이가 현 기관장보다 세 살 아래입니다.” 나는 얼른 이해를 못하고 눈만 깜빡거렸다. 그는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지금 참모진들 나이가 새 기관장보다 많습니다”고 부연했다.

그제야 나는 그의 말뜻을 이해했고, 동시에 ‘한국에서 왜 흔히 55세에 정년 퇴직하는가?’에 대한 내 나름대로의 답을 발견했다.

나이와 서열이 중요한 사회에서 50대까지 높은 자리에 오르지 못하면 흔히 나이가 아래인 사람을 보스로 따라야 한다.

한국은 나보다 젊은 사람 아래에서 일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는 서열 사회다. 나보다 한 학년 선배에게 깍듯이 선배 대접을 해야 하는 서열 사회다. 나이 많은 사람을 부하로 데리고 일하는 것이 무척 불편한 사회다. 한국은 실력과 업적보다 나이와 신분 등 서열이 중요한 사회이다.

나에겐 그런 한국사회가 미국사회와 대조되었다. 당시 오바마가 미국 대통령이었는데 그는 1961년생이고, 그의 러닝메이트 부통령인 조 바이든은 1942년생으로 대통령보다 19살 연상이었다. 거의 아버지 뻘이다. 한국에서 상상이나 할 수 있는 일일까?

약 10년 전 내가 아는 지인은 당시 30대 중반의 한국계 교포 2세로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굵직한 회사의 세계 마케팅 책임자가 되었다. 그 밑에 약 50명의 직속 직원들을 통솔하는데 모든 직원들이 예외 없이 40, 50대였다. 이 그룹의 책임자가 제일 어린 사람이었다. 그는 동양계 출신이고, 여성이다. 50명의 직원들은 나이만 아니라 경력도 대부분 책임자보다 길었다. 서열 중심이 아니라 능력위주이기 때문이다.

미국 일반 회사의 은퇴 연령은 65세이며, 젊은 상사들이 나이 많은 직원들을 관할하는 경우가 흔하다. 한국에서 흔치 않는 일이다.

내가 있었던 미국 대학교의 한국인 교수는 80세에 학교에서 은퇴했다. 미국 대학교는 은퇴 연령이 따로 없다. 70대의 교수들도 흔하고, 그들이 서열과 경력을 내세워 무위도식하지 않는다. 미국대학에서 세미나를 참석하면 백발에 허리가 구부러진 노교수부터 대학생까지 참석해 토론하는 광경은 천상(天上)에 있는 것과 같은 맛을 느끼게 한다.

약 30년의 경력에도 불구하고, 사회 관행 때문에 고귀한 경력이 사장(死藏)되는 것처럼 아까운 일이 없을 것이다. 자원 중에 제일 중요한 자원이 인적 자원이다. 물질적 자원은 사용할수록 고갈되고 낡아지지만, 인적 자원은 쓸수록 더 좋아지고, 분야에 따라 60,70대까지도 끄떡없이 빛을 유지한다.

인생의 가을인 40대 초부터 60대 중반의 시기에 많은 분들이 서열 사회의 부조리에 얽매여 30∼40년의 경력을 낭비하지 말도록 우리의 사고 방식과 사회 문화를 개선할 필요가 절실하다. 이렇게 하면 중년의 위기의 일차적 요인을 크게 향상시킬 수 있을 것이다.